비움과 여백이 있는 삶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정치 이야기일 겁니다. 최근 들어 종교나 부동산 이야기 보다도 더 예민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10명 모이면 대략 5명은 보수성향의 사람일 것이고, 5명은 진보성향의 사람일 겁니다. 동문회나 사교 모임에 나가서 누군가 정치이야기를 시작하면 마지막에는 큰 언쟁이 벌어질 겁니다. 동문회 단톡방 등 SNS에 누군가 정치 관련 이슈를 올리기 시작하면 큰 논쟁이 벌어지거나, 반대 성향의 사람들이 욕하고 화를 내면서 자진 탈퇴를 할 겁니다.
친구나 지인들은 저에게 정치이슈를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합니다. 옳다 그르다 판단하며 반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잘 들어줍니다. 그러다가 중간중간 상대가 생각해 보면 좋을 반대 진영의 논리를 살짝 질문 형식으로 물어봅니다. 어떤 때는 저와 다른 의견을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신기한 느낌마저 듭니다. 마치 대한민국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절대적인 상식이 2가지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반박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해봤자 상대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넘어갑니다. 정치적인 성향만 제외하면 괜찮은 사람인데, 그 한 가지 때문에 저의 생각을 강요하면서 사람을 잃을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믿음이나 가치관이 중요하듯이, 상대의 믿음이나 가치관도 중요합니다. 내 관점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사상이, 상대의 관점에서는 옳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와 생각이 정반대인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과도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거나 종교가 달라서 서로 불편한 관계일 수 있습니다. 대화하다가 서로 자기가 얼마나 옳은지 주장하며 격한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대화 후에 남는 것은 결국 마음의 상처뿐입니다. 내 생각과 주장 때문에 상대방이 상처받고 있는 건 아닌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의 사상이 중요하듯이, 상대의 사상도 중요합니다. 내 신념을 강요하기 전에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상이나 신념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상대에게 강요하는 건 결국 내가 옳다는 최고의 고집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변을 토하고 옳다는 걸 증명해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순간 상대방은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는 주장은 상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감정만 상하고 사람만 잃게 됩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옳다는 생각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옳다는 걸 이해시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있어야 사상이나 신념도 필요하고 의미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우선입니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대화하고 교류하기를 바랍니다. 나와 다른 사상, 나와 다른 신념도 기꺼이 인정할 수 있을 때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