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쉬운 플라톤의 국가 02
플라톤의 『국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다. 이 물음은 단지 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적 질문이기도 하다. 이 장에서는 『국가』 제1권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정의에 대한 견해들을 살펴보고, 소크라테스가 그 주장들에 어떤 반론을 펼쳤는지 정리해 본다. 또한 당시의 정치적 맥락과 연관 지어 정의 개념이 왜 중요한지를 살펴본다.
정의에 대한 다양한 주장
가장 먼저 정의에 대해 말하는 인물은 케팔로스다. 그는 늙은 부유한 시민으로서, 정의란 빚을 갚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무난한 상식 수준의 정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빚을 갚는 것이 항상 정의로운 것인지 반문한다. 예를 들어, 미친 친구에게 무기를 돌려주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행동인가? 이 질문은 정의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다음 등장하는 폴레마르코스는 정의란 각자에게 알맞은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친구에게는 선을, 적에게는 해를 주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이는 호메로스적 정의관에 가깝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적과 친구를 어떻게 정확히 구분할 수 있으며, 해를 끼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묻는다. 그에 따르면 정의는 누군가를 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야 한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트라시마코스는 훨씬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말하며,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법을 만들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상 힘의 논리이며, 현실 정치의 냉혹한 면모를 반영한 관점이다. 그는 또한 불의한 자가 정의로운 자보다 더 큰 이익을 얻고, 더 강력한 존재가 된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의 반론과 무지의 자각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 폴레마르코스,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에 각각 반박하며, 정의란 단순한 결과나 법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공동체 전체의 질서에 관계된 문제임을 강조한다. 그는 정의를 지식과 기술처럼 다룬다. 목수나 의사는 자신이 돌보는 대상을 위해 일하듯, 통치자 역시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통치자는 정의롭지 않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자각’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의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언제나 확신보다는 질문, 결론보다는 성찰을 중시한다.
정의 vs 이익 논쟁
트라시마코스와의 논쟁은 『국가』 1권에서 가장 치열한 부분이다. 그는 정의란 결국 힘 있는 자가 약자를 지배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힘만으로 이루어진 통치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정의가 단지 강자의 이익이라면, 공동체는 결코 조화롭고 평화롭게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의로운 삶이 결국 더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는 이후 등장하는 플라톤의 이상국가 설계와도 연결된다.
『국가』 제1권의 논쟁은 정의를 단순한 개념이 아닌, 정치, 윤리, 인간 본성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케팔로스의 도덕적 상식, 폴레마르코스의 전통적 정의, 트라시마코스의 현실주의적 정의 모두가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통해 재검토된다. 이 장은 『국가』 전체 논의를 여는 열쇠로서, 왜 정의가 철학과 정치의 핵심 주제인지 깊이 있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