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무단으로 가져간 그 문장 뒤에는 내가 있었습니다
“선생님 글, 정말 좋네요. 제가 제 SNS에 좀 올려도 될까요?”
처음엔 고마웠습니다.
누군가 내 글을 ‘좋다’고 말해주는 건 창작자에겐 무엇보다 큰 위로니까요.
하지만 며칠 뒤, 우연히 발견한 낯선 계정엔 제 글이 제 이름 없이,
마치 본인이 쓴 것처럼 올라가 있었습니다.
좋아요 수는 수천 개, 댓글은 백여 개.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글을 쓰셨어요?” “눈물 나네요”라며
칭찬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고, 곧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깊은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바로, ‘슬픔’이었습니다.
그 문장을 쓸 때, 나는 울고 있었거든요.
그 글은 몇 해 전,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처음 쓴 글이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날 밤,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아무렇게나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쓴 문장이었습니다.
“아버지라는 말이 아직 입 안에 맴도는데, 이제 그 이름을 불러도 대답할 사람이 없다.”
그 한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나는 수십 번 키보드를 두드렸다가 다시 고쳤고,
문장의 순서를 바꾸고, 적절한 단어 하나를 고르고, 다시 고쳤습니다.
그건 ‘작문’이 아니라, ‘기억을 꺼내는 일’이었고, 그 기억을 쓰는 건 ‘다시 한번 이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이, 누군가의 ‘좋아요’ 수를 올리기 위한 도구처럼 쓰이고 있었던 겁니다.
창작자는, 글을 남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글 안에 ‘자기 자신’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제 글을 허락 없이 사용하는 것을, 단지 무단 사용이 아니라,
제 삶의 조각을 훔쳐간 일이라고 느낍니다.
“인터넷에 있는 글은 그냥 써도 되는 줄 알았어요.”
이 말을 듣고 저는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작권’을 법이나 계약서로만 여긴다는 걸요.
하지만 저작권은 먼저, 사람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 글을 쓴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를 상상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 없이 가져간 글은, 종이 위의 문장일 뿐이지요.
그러나 그 글을 쓴 사람에겐, 인생이자 기억이고, 때로는 상처입니다.
요즘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SNS에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노래를 부릅니다.
하지만 그만큼, 누군가의 것을 너무 쉽게 가져다 쓰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복사와 붙여 넣기는 쉬워졌지만,
그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은 복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씁니다.
작고 소중한 감정들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하지만 그 글이, 그 감정이, 어느 날 낯선 이름으로 떠돌게 된다면,
저는 또 한 번, 아픈 이별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디 기억해 주세요.
그 문장 뒤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물로 꾹꾹 눌러쓴 감정이 있고,
사연이 있고, 이름이 있습니다.
그걸 허락 없이 가져간다면,
당신은 글이 아니라 사람을 훔치는 것입니다.
저작권은 법 이전에,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훔치지 않는 것.
이름을 남기고, 기억을 지키는 것.
그것이 창작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가장 따뜻한 약속입니다.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응모부문_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