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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Oct 16. 2023

너무 다 알면 재미없지

무계획 여행이 주는 즐거움

오늘 같이 맑은 날 여행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무작정 떠났던 상하이에서의 여행이 떠올랐다. 이젠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데라도 나들이하려면 스케줄들 되시는지 결제를 받아야 하니... 그립다.


중국은 설날을 춘제라고 부르는데 거의 열흘 이상 쉰다. 땅덩이가 넓으니 고향 방문을 하고 일터로 돌아오려면 그 정도의 휴가 기간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그 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미니 휴가를 즐긴다.

우린 여섯 식구. 세 아이에 남편의 나이 어린 사촌 동생도 상하이에 데리고 이주를 했다. 세 아이에다 사촌 동생까지? 그렇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인데 추진력이 매우 강하신(ㅠㅠ) 우리 시어머니의 강권하심으로 그 아이도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가 상하이로 떠나기 1년 전에 그 아이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공부하고, 밥 먹고 그랬었다. 나를 잘 따르기도 했고... 난 특유의 단순함과 오지랖으로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는 상하이 바닥에서 돌아다닐 때마다 쑥덕거림과 킥킥거림과 위아래로 스캐닝을 당하는 쓰거*(四个)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하나 밖에 낳지 못하는 (지금은 둘로 늘었다고 들었다) 중국 사람들 눈에 애 넷을 거느리고 다니는 내가 무척 신기했을 것이다.


암튼 애 넷을 데리고 차도 없이 여행 가기란 쉽지 않으니 상하이 시내 여행을 해보자고 남편이 제안했다. 나는 그가 뭔가를 계획했거니 하고 꽤 기특하게 생각했다. 안 하던 짓을 하네... 하면서도 뭐 물어서 괜찮은 곳을 알아봤나 보다 했다. 애들을 다 준비시켜서 버스 정류장에 데려가더니 '음, 저거야! 저거 타자!' 그래서 우린 우르르 몰려가 탔다. 우르르! 역시 올라타고서는 승객들의 스캐닝을 한차례 당하고 자리를 찾아서 모두 앉았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버스에 안내양이 있었다. 가는 목적지에 따라 요금이 달랐기 때문에 안내양은 승객에게 어디 가냐(你去哪儿)고 묻는다. 그런데 그 물음에 우리 남편이 너무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워부쯔다오(我不知道)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워부쯔다오는 '모른다'는 뜻이다. 안내양, 승객들 모두 빵 터졌다. 자기 혼자 탄 것도 아니고 애를 넷이나 데리고 마누라까지 함께 타면서 목적지를 모른다니...


남편은 안내양에게 '그냥 잡아 탔다. 이거 타고 어디 가면 좋을까' 물었다. 안내양은 친절하게 종이에 어디 가면 페리 정류장이 있는데 그거 타고 황푸강 건너서 걸으면 좋은 공원이 있고 어쩌고 저쩌고 자세히 써주었다. 내린 곳은 우리가 자주 다니는 번화가가 아닌 변두리였고 우린 정말 상하이 토착민들만 타는 페리를 탔다. 오토바이도 올라타고 꾸리꾸리한 냄새까지 나는 페리를 타고 내려서 걸으니 정말 큰 공원이 나왔다. 이름도 모를 그 공원은 그날 우리 가족 차지였다. 어딜 가나 사람 천지이고 복잡한 중국에서 이렇게 한가하고 여유로운 공원을 즐기다니! 잔디밭에서 축구하고 캐치볼 하고 도시락 까먹고 즐거운 여유를 누렸다.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 남편은 로컬 식당에 가자는 제안을 한다. 상하이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지만 우리가 간 지역은 한국인이 전혀 없는 지역이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종업원들의 눈이 두배로 커지더니 또 자기들끼리 숙덕거린다. 한궈른(한국인)이라며... 우릴 연예인 보듯이 쳐다보며 사인이라도 받을 기세였다.


극진한 대접을 받고 집에 돌아오는데 이런 여행 꽤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무계획 여행은 그 이후로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런 여행이 가능했던 까닭을 생각해 보니 내가 중국어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중국어를 유창하게 했다면 남편의 '워부쯔다오' 소리는 못 들었을 것이고 그날의 여유와 즐거움은 우리 추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언어를 못해도 어디를 꼭 가야 하고 어디 맛집이 있고 뭘 타야 하고 등의 정보가 넘쳐나니 무계획 여행은 더 요원한 일이 되었다. 계획한 만큼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오겠지만 가끔은 무계획이 우리에게 의외의 선물을 주기도 한다.


엑스포 택시라는 일반 택시보다 큰 택시에 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 타면 중국인 택시 기사가 막 화를 낸다. 그럼 우리 남편이 '그래서 엑스포 택시가 좋은 거 아니냐... 허허허'라고 대답하면 어이없어하며 출발했다. 택시에 포개서 앉았던 그 아이들이 이제 25,22,20,17살이 되었다. 아이들 데리고 그 이름 모를 공원 찾기 여행을 한번 가보는 것도 좋겠다. 아이들이 괜찮다고 사양하면 남편과 둘이...



쓰거*(四个): 중국인들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가 '몇 개'라고 할 때나 사용하는 '个'를 사용한다. 내가 지나가면 무슨 뱀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쓰거쓰거쓰거...' 소리가 따라왔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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