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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Oct 30. 2023

시작은 우아했는데...

끝은 좀 창피한 글

당분간 임윤찬의 음악이 내 플레이리스트에 계속 머무를 것 같다. 오늘도 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클릭했다. 그런데 베토벤이다… 다른 일을 하며 들을 수 없는…


번역가 이윤기 선생의 수필집 비슷한 책을 한 20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의 내용을 통틀어 아직도 기억나는 유일한 대목이 베토벤에 관한 이야기다. 베토벤은 다른 일을 하며 들어서는 안되고 그럴 수도 없다고 했다. 음악가로서 청력을 잃은 그가 만났을 절벽, 낭떠러지, 돌부리, 폭풍우, 웅덩이를 떠올려 본다면, 그리고 그가 그 난관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상상해 본다면 그의 음악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바로 앉아 예의 바르게 경청해야 한다고도 했던 것 같다. 어렴풋이 그렇겠다며 동의했었는데 작은 영웅 임윤찬의 연주를 통해 베토벤에 대한 예를 갖추고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알고리즘이 임윤찬의 연주에 빠져있는 나에게 신기한 쇼츠를 던져 주었는데 그 내용이 참 울림이 있었다. 약간 도인 같이 생긴 아주머니가 임윤찬을 평가하는데 그는 자기를 완전히 비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살아있는 사람은 그런 연주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를 비우고 음악으로 가득 채웠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임윤찬은 자기를 비우고 베토벤으로, 라흐마니노프로 가득 채운 것이다. 깊은 울림이 있었다. 소위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없는 삶을 살았구나. 이 콩쿠르에서 1등을 해서 나를 알리고 전 세계를 호령해야지라는 야망은 1도 없고 오직 이 소년은 피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자기 자신은 없고 오직 음악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임윤찬의 깊은 몰입은 어떻게 가능할까? 베토벤은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어떻게 작곡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입장에서 볼 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의외로 그들에게는 그게 가장 쉬운 길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너무 사랑하니까. 너무 사랑해서 연주에, 작곡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사랑이 답이다. 우리는 너무 결과에 몰입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뭔가를 이룬 사람들의 성과에 압도당해서 자신을 너무 몰아치거나 포기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현재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가 아닐까?




베토벤 선생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큰아이가 한 6살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내 에피소드에 자주 빌런으로 등장하시는 우리 시어머니께서 본인 지인의 결혼식에 우리 부부더러 대신 가라고 하시는 거다. 봉투를 전달해야 하는데 당신은 가기 힘드시다고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오라고... 나는 남편에게 가기 싫다고 했다. 남편이 내 편들고 안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 우리 남편은 효자였지...

구시렁구시렁 하며 애들 챙겨서 가기 싫은 걸음을 했다. 모르는 사람이어도 결혼식이니 축복해 주자는 마음으로 억지웃음 지어가며 앉아있었지만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빼앗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어퍼컷, 잽을 날리고 있었다. 밥이라도 맛있게 먹고 가자하고 피로연장으로 갔는데 흐르는 음악이 내 발작 버튼을 눌러버렸다. 피로연장에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왁자한 뷔페식당에서 베토벤을 들으며 밥을 먹으라고? 이런 음악에 대한 예의는 참새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아~~~'라고 '속으로' 외치며 여전히 볼이 퉁퉁 부어서 차에 올라탔다. 남편도 덩달아 화가 나서 우린 싸우지도 않고 싸운 상태가 됐고 난 남편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차를 잠깐 세웠을 때 차에서 내려 도망을 쳤다. 핑계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때문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머리도 하고, 차도 마시고 혼자 오랜만에 놀며 기분 전환하고 들어갔다. 내 잘못은 아니었다. 베토벤을 밥 먹는 자리에서 튼 그 놈들 잘못이지.




이런... 이 글의 시작은 우아했는데 마무리가 이게 뭔가...

어쨌든 베토벤은 밥 먹는 자리에서 틀지 말고, 하기 싫은 일 억지로 시키는 빌런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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