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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Oct 27. 2023

친구, 귀국 축하해

애엄마로 만난 친구 이야기

내향인인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그나마 친한 친구들이 해외에서 살고 있어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 친구 중 한 명이 완전 귀국을 했다. 4년 만의 만남이다. 코로나로 셧다운 되어 옴짝달싹 못하다가 남편의 퇴직과 함께 귀국하게 된 것이다.


이 친구와의 첫 만남은 특별했다. 상하이에서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딸 둘이 학교에서 돌아와 티격태격한다.


언니: 너 걔랑 놀지 말라고!

동생: 나도 안 놀려고 하는데 걔가 같이 놀재...

언니: 저번엔 너랑 놀기 싫다고 했다며!

동생: 몰라... 또 놀재... 히잉...


아이들이 국제학교에 적응할 무렵 한국 여자 아이가 전학을 왔다. 그 아이는 이미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영어도 잘하고 활달한 아이였다. 얌전하고 말이 없는 둘째와 한 반이 되었는데 한국 아이들끼리 친해졌는 모양이었다. 1,2 교시 후에 있는 플레이 타임에는 프라이머리 과정이 모두 나와 놀 수 있는데 언니와 동생이 플레이 타임에 서로 어디서 노는지 챙겨 보고 그랬나 보다. 그런데 언니가 볼 때 자기 동생이 그 전학생에게 치인다는 생각이 들었지 집에 와서 동생에게 저렇게 잔소리를 한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음의 우아한 목소리였다. 전학생의 엄마였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도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실은 매우 부담스러웠다. 어떤 일로 만나자 했는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 동생이 전학생과 노는 모양새를 지켜보던 큰 아이가 동생을 잡아끌고는 '너 쟤랑 놀지 말랬지!'라고 했나 보다. 그 이야기를 전학생이 들었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엄지 광장에서 보기로 했다. 광장 가운데 있는 의자에 롱스커트를 입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뭔가 작은 책을 펼치고 기도하고 있는 듯 앉아있었다. 중국에서 한국 사람은 티가 난다. 딱 봐도 한국 사람 같아 다가가 인사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들의 불화 문제 때문에 만난 엄마들이 이렇게 환하게 웃고 인사할 수 있는 건가? 둘 다 너무 천진하게 인사하고는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그것도 껄끄러운 화제를 갖고 있는 둘이 밥을 먹으러 갔다. 참 신기했다.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 거다. 처음 본 순간부터 아마 서로에 대해 경계 대상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식사를 하며 플레이 타임에 있었던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그럴 줄 알았어요. 우리 딸이 문제였네요. 걔가 맘은 여린데 말을 예쁘게 안 해서 저한테 많이 혼나요. 미안해요...' 이런다. 삿대질과 고성, 욕설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팽팽한 텐션이 있으리라 예상했던 만남이 너무 소프트한 몰랑이가 되어버린 거다. 그날 우린 밥 먹고 차 마시며 서로의 가정사까지 술술술 읊었던 것 같다.


그날의 만남은 '진심'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어른이 되어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늘 내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나는 워낙 사람을 의지하는 성격이 아닌 데다가 선을 넘는 법이 없다. 그러니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진심이라는 무기를 들고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녀는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그래서 같은 해에 태어난 우리는 친구 하기로 했다. 사족이지만 우린 외모, 분위기도 비슷해 자매냐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녀를 어제 만났다. 만나서 한참을 안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었다. 촉촉한 눈으로 서로 바라보며 또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이른 점심시간에 만나 밤 9시 넘어까지 먹고, 걷고, 마시고, 걷고 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누굴 만나면 늘 매우 피곤한 내가 9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는데 피곤하지 않다니! 함께 있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내 피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어제 새삼 깨달았다. 그녀는 대화할 때 내가 계속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그걸 온 맘으로 들어준다. 경청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니 신나게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그녀를 닮아 그녀의 이야기에 마음을 다해 귀 기울인다.




나는 아침마다 기도제목이 적힌 종이를 펼친다. 2023년 기도제목이 적힌 A4 네 장은 이제 너덜너덜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제목에 그녀의 가정을 위한 기도제목도 있다. 아들이 어려운 일을 겪었다가 성숙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나의 기도가 느껴졌다고 예쁘게 이야기해 준다. 서로의 시련과 아픔을 모두 공유한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가 잘 되길 바라고 응원한다. 이제 한국에서의 인생 2막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길 기도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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