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서 용서를 배우다
임신 막달 즈음에 정밀 초음파라는 걸 했다. 그때까지도 아이의 성별을 물어보지 못했다. 위로 둘이 딸이었기 때문이다. 딸 셋 중 큰딸이었던 나는 세 자매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지만 친정 엄마는 '엄마 닮아 딸 셋을 낳았구나'라는 소리가 두려우셨는지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날 초음파를 봐주던 의사는 '성별 아시죠?'라고 심드렁하게 물었다. 소심한 목소리로 아직 모른다 했더니 "요기 방울 두 개 보이시죠? 옷을 다 새로 사야겠네~"라고 한다. 와우! 셋째 딸도 괜찮다 했지만 내심 나도 아들을 엄청 원했었나 보다. 친정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큰 효도한 것 같았다. 우리 막둥이를 낳았을 때.
기숙사에 있는 아들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마다 라이킷을 눌러주는데 눈물 나게 고맙다. 엄마 카톡은 씹으라고 있는지 잘 씹어 잡수던 녀석이 라이킷을 눌러주니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판이다. 누나들 이야기를 썼으니 아들 이야기도 써야겠기에 허락을 구했다. '그 사건 엄마가 좀 쓰고 싶은데 괜찮아?' 쿨하게 쓰라고 했다. 그래서 쓴다.
우리가 상하이에 살 때였다. 아이들을 영국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그 학교는 일 년에 한 번씩 Book Week라는 행사를 했다. 책 주인공처럼 꾸미고 오는 Costume Day를 비롯해서 책과 관련된 많은 행사를 한다. 마지막날에는 원하는 책을 구매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사전에 책 목록을 보내고 자신이 사고 싶은 책을 정하도록 하는데 당시 7살이었던 우리 아들은 레고에 빠져있었기에 해리포터 레고 책을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가격이 내가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레고 피규어 몇 개 들어있는데 거의 우리 돈으로 7~8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중국은 레고가 한국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한국 들어갔을 때 레고를 사주마 달래고 다른 책을 사도록 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커다란 책을 펼쳐놓고 열심히 보고 있다가 내가 방에 들어서니 깜짝 놀라 당황하는 거다. 나도 당황했다. 사고 싶다던 바로 그 해리포터 레고 책이었기 때문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쳐다보는데 수만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어떡하지? 소리 질러야 하나? 아이를 때려줘야 하나? 훈계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숨을 고르고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이미 울고 있었다.
엄마: 왜 울어?
아들: 잘못했어요.
엄마: 왜 그랬어?
아들: 너무 갖고 싶어서...
너무 갖고 싶다고 자기 것이 아닌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일곱 살 아이도 이미 알고 있다. 하나님이 날 때부터 심어주신 양심이 아이에게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있는 아이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것이 무슨 교훈이 되겠나.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이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잘못한 일이니 바로 잡자고 했다. 이미 포장을 뜯어버린 책은 반납할 수 없으니 책 값을 다음날 학교에 가져가게 했다.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고 나는 그 사건을 남편에게도 누나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절대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우린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매해 책 정리를 한다. 그날도 버릴 책과 팔 책을 분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책'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걸 빨리 빼서 안 보이는 아래쪽에 넣어야지 하고 있는데 아들이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 책을 뽑으며 하는 말.
"엄마, 헤헤, 이거 내가 그때 훔쳤던 거."
'훔. 쳤. 던'이라고 했다. 나는 예전 그날 아이에게 '훔쳤다'라는 단어를 절대 쓰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그날 한 행위는 '그 행위'가 아니라고 거부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훔쳤다'는 단어를 썼다. 아들은 그 말을 던지고 휙 일어났지만 나는 그 단어에 왈칵 눈물이 났다. 이 아이는 정말 용서받았구나! 자신이 한 행위와 자기 자신을 분리하는 것, 용서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너무나 감사했다. 나는 그날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첫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난리가 났을 수도 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지혜가 생긴 덕에 그런 기특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었지 싶다.
용서에 대한 깊은 감동을 누린 후 남편에게 비로소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한참을 우리가 받은 참 용서와 은혜에 대해 나누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만큼 나는 믿음이 없다. 그 아이는 엄마에게서 받은 용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담담하게 자신의 '죄'와 마주할 수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죄의식과 정죄감에 빠져있을 때가 많다. 용서하시는 분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나를 자유하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눴던 것 같다. 엄마에게 용서를 묵상하게 해 준 아들이 새삼 고마워지는 밤이다.
중학교 때까지도 엄마랑 꽁냥꽁냥하던 아들이 고등학생되고 기숙사에 있으니 너무 허전하다. 언제까지 물고 빨고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이젠 우러러봐야 하는(186cm) 지체 높으신 분이 되었으니 놓아드려야지... 다시 고3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니 비장해진다. 아들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는 2024년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