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난 사람의 성격을 틀에 넣고 이 사람은 이런 유형, 저 사람은 저런 유형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좀 우습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데 16개의 틀에 가둔단 말인가(이것도 내 성격에서 나온 불만이라는 걸 알았다...반항심)! 그런데 요새 인간관계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겪고 나니 MBTI에 관심이 생겼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이길래 저러지... 난 또 어떤 인간이길래 저런 인간에 치를 떨지... 이젠 초등학생들도 만나면 '선생님, MBTI 뭐예요?'라고 묻는 통에 매번 모른다고 하기도 지겨워 간단 검사를 해봤다.
I(Introversion): 내향형
N(iNtuition): 직관형
F(Feeling):감정형
J(Judging): 판단형
결과 페이지에는 흰머리 수염 덥수룩한 할아버지가 있고 '통찰력 있는 선지자, 예언자형'이라고 쓰여있다. 선지자, 예언자라고? 매우 부담스럽지만 계속 읽어보기로 한다. 일단 맘에 드는 것이 전 세계 2% 밖에 없는 희귀한 성격이란다. 흔하지 않은 거 너무 좋다. 그런데 알파벳이 말해주는 단어가 충돌한다. 감정형이면서 판단형! 그래, 내 성격을 나도 모르겠더니 이렇게 모순되는 성격이었구나...
일단, INFJ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상처'라고 할 수 있다 한다.상처를 받았을 때 회복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고 가까운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았을 경우엔 크게 무너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상처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하고 갈등을 극혐 한다. 정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주 전 가까운 사람에게서 어이없는 오해를 받고 악다구니 쓰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사과하기를 기다렸지만 사과는 없다. 나는 가만히 문을 닫았다. 그가 나에게 베푼 호의와 관심은 서랍장에 잘 간직하자. 그때 받았던 사랑도 없었던 듯 행동할 순 없다. 그건 나답지 않다. 그러나 이젠 끝이라고 결론지었다. 이걸 도어 슬램(Door Slam)이라고 한단다(대박! 이런 적확한 용어가 있었어!). 그러나 그는 내가 문을 닫은지는 모를 것이다. 일상적인 대화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마음은 이제 나누지 못할 것 같다.
INFJ는 다른 MBTI보다 특별한 통찰력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눈치가 빠르고 상대방의 가식과 거짓말도 간파하는 능력이 있지만 모른 척한단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남편이 MLB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가끔 보는데 몇 년 전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선수가 있었다. 대개 KBO 리그에 있던 선수들도 마이너로 갔다가 메이저에 어렵사리 진출하는데 이 선수는 류현진에 이어 두 번째로 MLB로 직행한 선수라고 했다. 이 선수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하트 뿅뿅 나오는 눈을 하고 설명을 하는데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응... 쟤... 저렇게 잘하다가 겸손하지 않으면 무슨 큰 일 낼 것 같아..." 남편의 떫떠름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그 선수의 성추문, 음주운전 등의 뉴스를 보며 남편은 존경의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어?" 아는 게 아니라 그냥 느낌이다(참고로 그 선수는 지금 완전히 변화되어 착실하게 아름다운 가정 이루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렇게 설명한긴 어렵지만 사람을 만나면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금방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과 갈등이 별로 없는 편인데 어쩌다 불편한 관계가 생기면 난 미친다...
INFJ는 보수적이면서도 반항적이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런데 정말 내가 이렇다. 나는 모든 면에서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라는 건 수구, 옛 것을 지키려는 성향인데 내 맘에는 순응하기 보다 삐딱한 반골 기질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어떤 공동체에 속해도 남이 등 떠밀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앞에 나서지 않는다. 팔짱 끼고 뒤에서 '왜?'라는 질문을 좀 해줘야 한다. 그리고 못 참고 말 몇 마디 던지다가 '그럼 네가 해보지 그러니?'라는 고수의 토스를 받아 억지로 앞장선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나의 자리는 늘 뒷자리다. 자세는 늘 다리 꼬기.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건 완전 아멘이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이 싫은 건 아니다. 나름 그런 모임에서도 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돌아오면 가만히 혼자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서 나는 지칠까? 생각해 보니 나는 늘 의미를 찾는 것 같다. '그냥' 하는 게 싫다. 뭐든 의미를 찾는 습성이 있어서 하하호호 수다만 떠는 모임에서는 에너지를 뺏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내 사정을 모두 알고 내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해 주는 친구가 3명 정도 있다. 3명밖에 없어서 슬픈 적은 없다. 그나마 한 명은 외국에 있어서 전화 통화를 주로 하는데 그마저도 자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과는 보이지 않는 튼튼한 끈으로 연결된 느낌을 늘 갖고 있다.
이 외에도 정말 신통방통하게 나를 표현하는 INFJ의 특성이 나열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고 매우 즐거웠다. 오늘도 함께 수업하는 중학생 녀석과 성격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MBTI를 맞추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나와 3년 정도 수업을 한 아이였는데 "샘, 인프제잖아요!" 그런다. 흠... 그렇게 티 났니? ^^;
딸에게 MBTI에 대해 글을 쓸거라 했더니 궁금한 거 있음 자기한테 다 물어보란다. 아이들이 준전문가다. 그래서 소개팅할 때도 만나자마자 서로의 MBTI 묻고 막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건 필수란다. 좀 씁쓸하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세상과 세상이 만나는 것이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은데 미리 그 사람의 세계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싶어서. 물론 미리 알아서 실수와 오해, 방황을 막고 싶은 마음도 있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관계를 맺는데도 서두르는 모양새로 보여 안타깝다는 것이다. 매우 인프제스러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