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tainsight Dec 27. 2023

고통은 왜 몰빵인가

슬픈 그녀를 위해 기도하며

기도실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오늘 생각나는 시다. 앙금처럼 가라앉아있던 고통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마음을 어지럽힌다. 왜 고난은 늘 당하는 사람에게 몰빵으로 주시는가. 지인의 황망한 소식을 들으며 다시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녀의  친정에는 장애가 있는 동생 둘이 있다. 작년에 처음 만났을 때, 두 동생을 평생 집에서 돌보시던 어머니께 지병이 생겨서 앓아누우셨다고 했다. 너무 밝게 이야기해서 나는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했다. 그런데 며칠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정아버지가 너무 힘들어하고 계시고 그녀는 매일 친정으로 출근해서 동생들 씻기고 먹이는 일을 돕고 있다. 그런데 그녀에겐 얼마 전 장애 판정을 받은 막내아들이 있다. 세 아이가 있던 그녀는 감동이 있어 기도하며 넷째를 입양했는데 그 아이에게서 장애가 발견된 것이다. 더 이상 일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서 특수한 시설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여기까지 읽기만 했는데도 숨 막히지 않는가...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깊은 슬픔 위에 내 값싼 위로가 천박하게 둥둥 떠다닐 것만 같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늘 고통 앞에서 나오는 나의 레퍼토리 'Why....' song이 맴돌았다. 왜 아름다운 마음으로 헌신하여 생명을 거둔 부부에게 장애아를 보내신 건지, 왜 한 부모에게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둘이나 주신 건지, 남겨진 자식들은 어떻게 살라는 건지, 왜 이런 시련은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지... 나의 불만 가득한 와이송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오늘은 나와 별별 이야기를 다하는 중학생 남자아이와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어떤 솔거 이야기>를 읽고 하는 수업이었는데 이 녀석과 수업할 때는 늘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다. 워낙 역사, 지리, 사회, 경제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자신의 이야기에 열정적으로 반응해 주는 어른이 없는지 나만 만나면 장똘뱅이 보따리 풀듯이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오늘도 역시, 조정래 님은 소설 속에서 개인의 행동과 가치관을 비판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의 구조와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는지 논쟁을 하다가 '신은 평등한가'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녀석: 그렇담 샘이 믿는 하나님은 참 불공평한 것 같아요.

나   : 뭐, 아프리카 애들 얘기하려는 거야? 

녀석: 네, 뭐, 누군 시작도 못하고 기회도 못 갖잖아요. 그런 신이 어딨어요? 

나   : 그래... 이 세상은 불공평해.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너희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겠다는 말은 없어.

녀석: 그런 불공평한 신을 왜 믿어요?

나   : 왜 믿냐고? 일단 믿음에 대해선 나중에 얘기해 줄게. 1시간 짜리거든. 근데  성경에선 사랑에 대해 말하

       고 있어.


여기까지 듣더니 아이는 사랑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냐고 물었다. 사랑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지, 밥을 먹여주는지를 물었다. 그렇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사랑을 주셔서 서로가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하셨다고. 풍요로운 사람은 빈곤이 있는 곳에 가서 나누고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라고 사랑을 주신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모두가 평등하면 행복할까? 사랑이 없는 평등은 지옥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논쟁은 거기서 멈췄다. 더 따져 묻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시간이 다 되었다. 다행히도...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일들이 많다. 사랑이 결부된 일은 비상식적인 결말이 훨씬 많다. 미국에서 최고 학부를 나와 의사, 간호사로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던 많은 젊은이들이 듣도 보도 못한 조선이라는 땅에 선교사로 발을 디뎠다. 그들 중엔 배에서 내리자마자 성경책만 내려놓고 순교한 자도 있고, 이질로 아이들을 모두 잃은 사람도 있다. 이게 무슨 낭비인가!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내려놓고 자신들을 배척하고 거부하는 땅에 온 그 젊은이들을 움직인 비상식적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게 바로 사랑이다. 




다시 나의 와이송으로 돌아와야겠다. 고통도 공평하게 배분을 좀 해주시지 억장이 무너지게 '깐데또까'도 아니고 이미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얹어주시니 화가 난다는 것이다. 랩 같다... 그런데 이 와이송에 대한 대답은 늘 없다. 그분은 침묵의 대가이시기 때문이다.  왜 그녀를 그렇게 힘들게 하시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고통이 그녀 앞에서 매우 사소한 것이 되어버렸고 나는 그녀가  잘 견디길 눈물로 기도할 뿐이다.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든 그녀를 돕게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곰의 탈을 쓴 사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