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초월해서 마음을 나누고 위로받아본 적이 있는가? 나이 많은 사람은 어렵사리 자기 마음을 연 젊은이에게 뜨거운 '라떼'를 권해서 입안을 홀딱 데게 하기 일쑤다.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여는 일은 더욱 요원하다. 우리 문화에서는.
그런데 나는 신앙 안에서 그런 일을 종종 경험한다. 그날도 그랬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리다. 그녀가 좀 안쓰러웠다. 다리도 다치고 남편은 바쁘고 아들은 공부하느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밥 한번 먹자 했는데 그녀의 집에서 정성 가득한 밥상을 대접받았다. 내 의도는 이게 아니었는데... 밥상부터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며 난 어느새 내 힘든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고 울고 앉아있다. 희한하다. 그녀는 T다. 난 F. 내 이야기에 쿨하게 던지는 그녀의 멘트 하나하나가 내게 큰 위로가 된다.
그녀가 샀음직한 테이블야자와 행운목
그렇게 위로를 받다가 그녀 집 창가에 있는 커다란 화분을 보았다. 싱그럽게 잘 자라고 있는 식물을 보며 칭찬했는데 너무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전에 작은 포트에 담겨 있던 아이들이 자라서 그렇게 커다랗고 멋진 청년들이 된 것이다. 감동적이었다. 테이블야자와 행운목. 테이블 야자는 테이블에서 자랄 만큼 작고 아담한 야자라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크다니! 행운목도 얼마나 앙증맞은 녀석인지... 그런데 이렇게 크게 키운 것이다. 식물을 키워 본 사람은 안다. 그런 작은 녀석들을 저렇게 크게 키워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식물을 너무 사랑하지만 사랑이 너무 지나쳐 저 세상으로 보낸 적이 너무나 많다. 테이블야자도 행운목도 내 손을 많이 거쳐갔다...ㅠㅠ
이 정도는 되어야 반려 식물이리라!
그녀가 보내준 사진을 보며 감탄, 또 감탄을 하고 있다. 그녀와 그날 나눈 이야기 주제 중에 '거리 두기'가 있었다. 관계를 맺을 때 마음을 연다 싶으면 무조건 삶의 모든 것을 나누고 네 맘이 내 맘이고 내 맘이 네 맘이려니 하며 친밀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관계가 꼭 아름답게 끝나지는 않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가 쾌적하고 향기로운 인간관계를 만든다는 데 동의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멋지게 식물 식구들을 키워낸데도 그런 관계의 원리가 적용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죽여본 입장에서 보니 식물은 너무 지나친 사랑과 관심을 보이면 병이 나는 것 같다. 좀 떨어져서 살펴보고 겉흙이 마르면 물 충분히 주고 또 무심한 듯 떨어졌다가 집이 좁아졌다 싶으면 넓혀주고 가끔 들여다보는 정도의 정적인 관심이 딱 좋은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한결같고 따뜻한, 넘치지 않는 관심으로 아가들을 청년으로 잘 키운 게 아닌가 싶다.
한 가지 더 깨달은 건 테이블야자가 테이블을 떠나 키다리야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름에 테이블이 붙어서 난 걔네들이 그 정도만 크는 줄 알았다.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니 이렇게 잘 자라는구나! 아이들을 키우는 데도 이런 원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한계를 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겠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Sky is the limit!'이라고 말해주어야겠다. 거리를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