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다큐멘터리에서 한 도예가의 작업 장면을 보았다.
그는 30년째 같은 접시를 만들고 있었다.
“매번 똑같이 만든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매번 다릅니다.”
그의 말처럼, 똑같은 흙, 같은 손놀림, 같은 가마 속에서도
미세한 유약 농도, 온도 차이, 손끝의 힘이 매 순간 다른 결과를 낳았다.
그는 일본의 전통 장인, ‘쇼쿠닌’이다.
수천 번의 반복 속에서 그는 하나의 형태를 다듬고, 같은 것 안에서 차이를 감지하고, 그 차이를 완성도로 승화시켰다.
우리는 흔히 "반복"을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긴다.
회사에서 똑같은 보고서 양식을 채우는 일, 매일 같은 시간에 울리는 알람, 습관처럼 반복되는 말과 행동들.
하지만 반복은 정말 그렇게 하찮은 것일까?
아이들은 같은 그림책을 수십 번 읽어달라고 한다.
재즈 연주자들은 매일 같은 스케일을 연습한다.
장인들은 수천 번의 시도 끝에 0.1mm의 오차를 수정한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수많은 시냅스를 연결하며 반복을 통해 스스로를 재구성한다.
반복은 단순한 루틴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만들고, 감각을 정제하고, 존재를 구성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자기계발 글이 아니다.
심리학자, 운동학자, 뇌과학자, 철학자, 예술가 등 10명의 인물을 통해
반복은 어떻게 인간을 만드는가?를 묻는다.
- 안데르스 에릭슨은 반복이 전문성을 만드는 방식에 대해,
- 제임스 클리어는 습관이 정체성이 되는 반복을 이야기하고,
- 키에르케고르는 반복을 실존을 회복하는 윤리적 행위로 해석한다.
- 들뢰즈는 반복이 차이를 창조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말한다.
반복은 단지 똑같은 걸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되풀이하면서 나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반복을 AI에게 넘기고 있다.
알고리즘이 대신 학습하고, 자동화된 시스템이 업무를 반복한다.
하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반복이 있다.
의식적이고 의미 있는 반복.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구성하고, 세상을 감각하고, 삶을 예술로 바꾼다.
이 글은 연재 시리즈의 프롤로그입니다.
다음 글부터는 한 명씩 인물을 따라가며
반복의 기술, 반복의 감각, 반복의 철학을 탐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