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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가 안 된다면, 당신은 며칠을 버틸 수 있나요?

by 정영기

디지털 결제 시대, 왜 현금의 재조명이 필요한가?


2025년 4월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이 갑작스러운 대규모 정전으로 멈춰 섰다.
도시의 불빛은 꺼졌고, 통신망이 마비되며 카드 결제는 전면 중단됐다. 사람들이 패닉에 빠진 순간, 진짜 문제는 전기가 아니라 ‘지불 수단’이었다.


호텔 체크인은 물론, 지하철 탑승, 커피 한 잔조차도 ‘현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은 네덜란드 중앙은행이 최근 내린 조치 배경이 되었다.


“결제 시스템 장애에 대비해 최소 72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준비하라.”


이른바 ‘72시간 생존 전략’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생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1. 디지털 결제 취약성, 편리함 뒤의 불안정성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디지털 결제 강국이다.
식당, 노점, 교통카드, 세금 납부까지 대부분이 스마트폰이나 카드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편리함은 극도로 집중된 결제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

정전, 해킹, 네트워크 오류 등 단 한 번의 충격으로도 사회 전체가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2년 사이 네덜란드에서는 두 차례 전국적 결제장애가 발생했고, 2025년의 유럽 정전은 그 연속선상에서 디지털 결제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2. 왜 다시 현금의 재조명인가?


이제 현금은 단순한 낡은 수단이 아니다.
"위기 속에서 작동 가능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다시 수행하고 있다.
특히 노인, 외국인 노동자, 저소득층 등 디지털 소외 계층에게 현금은 여전히 생활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자원이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단순히 현금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결제 시스템이 멈췄을 때도 개인이 최소한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복원력 있는 사회 구조를 고민하라는 경고다.


3. 기술은 믿되, 맹신하지 말라 — 기술과 신뢰의 문제


우리는 기술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기술은 실패할 수 있고, 그 순간 사람들은 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결제 시스템의 불통은 단지 돈이 오가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거래, 이동, 만남, 생활 전반을 중단시키는 신뢰 붕괴 사태다.

따라서 기술과 신뢰는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디지털 시스템의 효율성과 함께, 위기 상황에서도 작동 가능한 다양한 대응 수단이 확보되어야 진짜 ‘스마트 사회’라 할 수 있다.



4. 다른 나라의 선택 — 복원력 있는 사회를 향하여


스웨덴은 디지털 결제율 98%를 자랑하지만,
중앙은행 주도로 “현금 접근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또한 위기 대비용 오프라인 결제 훈련 시나리오를 시민과 공유하며, 시스템 다운 시에도 최소한의 거래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갖췄다.

네덜란드도 현금 보유 캠페인과 ATM 접근성 유지를 병행하고 있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정전 이후 결제 시스템의 백업 플랜을 전면 재정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현금 없는 사회를 꿈꾸기 전에, 결제 없는 72시간을 상상해 봐야 할 때다.


5. 2025년 유럽 정전 사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2025년의 정전 사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도 당연히 여기던 ‘결제의 일상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디지털 사회는 ‘빠름’과 ‘편리함’뿐 아니라, ‘중단될 수 있음’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결제는 멈췄다. 당신은 준비됐는가?


네덜란드의 72시간 권고, 유럽의 정전 사태, 그리고 우리의 삶.
이 모든 것이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결제가 멈췄을 때, 당신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현대적 생존 질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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