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식물철학

인간과 식물을 다시 보다

by 정영기

식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매일 식물을 보고, 숨 쉬고, 먹으며 살아가지만 정작 식물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최근에는 '식물철학'이라는 흥미로운 분야가 등장해 인간과 식물의 관계,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식물철학의 핵심 개념부터 고대와 현대의 관점,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식물과 맺는 관계까지 폭넓게 살펴보고자 한다.


식물철학이란 무엇인가? –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묻다


식물철학이란 식물을 단순한 자연물이나 자원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 식물의 존재론적 의미와 인간과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최근 출간된 『식물 사람: 철학적 식물학』에서는 식물철학을 "생태철학의 최전선에서 식물과 인간의 관계에 집중한 본격적인 철학적 식물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은 자연과학, 종교학, 인류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식물철학.png


식물철학의 핵심 질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식물을 주변적인 존재로만 인식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과 식물의 경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그리고 식물도 '존재'로서 고유한 권리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이처럼 식물철학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식물의 본질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 묻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구 사상사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식물을 '수동적이고 비활성적인 존재'로 간주해 왔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중세의 여러 철학자들은 식물을 생명의 위계질서에서 가장 밑바닥에 두고, 인간이 식물을 자의로 이용하는 것을 정당화해 왔다. 하지만 식물철학은 이러한 '배제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인간과 식물의 연속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고대 철학에서 본 식물의 영혼 – 아리스토텔레스 식물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어떤 의미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생명체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고, 식물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영혼이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영혼은 인간의 영혼과는 다르다. 그는 식물의 영혼을 '영양섭취적 영혼'이라고 불렀다.


이 영혼은 식물이 토양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성장하며, 번식하는 능력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즉, 식물의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원리로써의 영혼을 상정한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는 이를 식물의 대사 과정, 세포 분열, 유전적 번식 등으로 설명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의 본질을 탐구하며 '식물철학자'로 불렸다. 그는 식물의 효용성보다는 식물 자체의 특성과 본질, 그리고 식물들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식물의 성장 습관, 나무껍질, 열매와 뿌리의 특징 등 다양한 지표를 사용해 식물의 본질을 파헤쳤고, 이는 자연과학 발전의 기틀이 되었다.


이처럼 고대 철학에서 식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론적 탐구의 중요한 대상이었다. 식물의 영혼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식물의 생명현상과 의식,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출발점이 된다.


Image_fx - 2025-06-12T005629.194.jpg


현대의 철학적 식물학 – 식물의 의식과 신경생물학


현대에 들어 식물철학은 더욱 다채로운 논의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식물 신경생물학'이라는 분야가 등장해 식물의 '의식'이나 '지능'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식물이 환경을 감지하고, 자극에 반응하며, 심지어 일종의 기억과 학습 능력까지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식물은 빛, 온도, 습도, 중력 등 다양한 환경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떤 식물은 해를 따라 움직이고, 어떤 식물은 포식자의 접근을 감지해 방어 물질을 분비한다. 이 모든 과정이 신경계가 없는 식물에게서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식물의 세포와 호르몬, 그리고 복잡한 신호 전달 체계 덕분이다.


이처럼 식물의 생리적·행동적 반응을 두고 '식물의 의식'이나 '식물의 지능'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물론 식물이 인간처럼 생각하거나 느낀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식물이 결코 수동적이거나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철학적 식물학은 이러한 과학적 발견을 바탕으로, 식물의 존재론적 지위와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 묻고 있다. 식물도 환경에 적응하고, 서로 소통하며,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식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식물의 권리, 식물의 윤리 등 새로운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반려식물과 환경윤리 – 일상에서 만나는 식물철학


최근 몇 년 사이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집안 곳곳에 식물을 들여 키우고, 식물과의 교감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반려식물은 단순한 인테리어 소품을 넘어,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위안을 주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런 현상은 식물철학의 대중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식물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식물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반려식물은 인간과 식물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식물을 키우며 자연스럽게 환경윤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식물을 돌보는 경험은 생명의 소중함, 환경의 중요성,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존성을 체감하게 한다. 식물철학은 이러한 일상적 실천을 통해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생태적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식물철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식물철학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식물의 존재와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식물도 고유한 생명과 존재의 가치를 지닌 존재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과 자연,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대의 식물 영혼론에서 현대의 식물 신경생물학, 그리고 반려식물 문화에 이르기까지 식물철학은 끊임없이 인간과 식물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길을 모색해 왔다. 앞으로도 식물철학은 우리에게 "우리는 식물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다.


궁금증 세 가지


Q1. 식물에도 진짜 '의식'이 있을까요?

식물은 인간처럼 자각하거나 생각하지는 않지만, 환경을 감지하고 복잡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식물이 자극에 '학습'하거나 '기억'하는 현상도 발견되고 있다. 다만, 이 모든 반응은 인간의 의식과는 다른 방식이며, '식물의 의식'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철학적·과학적으로 진행 중이다.


Q2. 식물철학이 실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식물철학은 우리가 식물을 단순한 자원이나 배경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반려식물을 키우거나,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등의 실천은 식물철학의 일상적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Q3. 식물철학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최근 출간된 『식물 사람: 철학적 식물학』(매튜 홀 저)은 식물철학의 다양한 쟁점과 역사, 그리고 현대적 의미를 폭넓게 다루고 있어 입문서로 추천할 만하다. 고대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의 저작도 함께 참고하기 바란다.


Image_fx - 2025-06-12T005816.920.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