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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실패 축제

by 정영기

지난해 한 스타트업 창업자가 SNS에 올린 게시물이 화제가 됐다. "오늘로 3년간 키운 회사를 정리합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그는 자신의 실패 경험을 상세히 공유했다. 예상과 달리 댓글창은 비난이 아닌 응원으로 가득 찼다. "용기 있는 공유 감사하다", "당신의 실패에서 배운다"는 반응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게시물이 수많은 예비 창업자들에게 실질적인 교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실패를 숨기지 않고 나눴을 때, 그것은 누군가에게 가장 값진 자산이 되었다.


핀란드에서는 매년 10월 13일을 '세계 실패의 날(Day for Failure)'로 지정해 기념한다. 학생과 기업가, 연구자들이 모여 자신의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얻은 교훈을 나누는 행사다. 실패를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는 대신, 성장의 과정으로 인정하고 축하하는 문화. 이것이 바로 '실패의 날'이 담고 있는 핵심 철학이다. 실리콘밸리의 '빠르게 실패하라(Fail Fast)' 문화나, 최근 주목받는 '실패 이력서(Failure CV)' 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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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가. 입시에서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고, 이직이나 창업 실패는 경력의 오점으로 기록된다.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로 낙인찍는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실패를 숨기기 바쁘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도전 자체를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실패가 두려워 안전한 길만 선택하고, 혁신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청년 실업률은 높은데 창업률은 OECD 최하위권에 머무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먼저 교육 현장에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스탠퍼드 대학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패학(Failure 101)'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실패를 학습 과정의 일부로 가르친다. 학생들은 실패 경험을 발표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토론한다. 우리 교육도 정답 찾기보다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을 강조해야 한다. 기업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구글은 'X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프로젝트의 팀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한다. 과감한 시도를 장려하고, 실패에서 얻은 데이터를 조직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정부 정책도 재창업 지원, 신용 회복 기간 단축 등 실패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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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수천 번 실패했지만, 그는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방법 수천 가지를 발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패를 숨기고 부끄러워하는 사회는 정체된다. 반면 실패를 나누고 배우는 사회는 성장한다. 이제 우리도 '세계 실패의 날'의 정신을 받아들일 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문화, 실패에서 배우고 다시 일어서는 문화를 만들어갈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진정한 혁신과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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