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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연애하는 10대’ 농담이 아니다.

by 정영기

1) AI연애


상상해 보세요. “선생님, 제 애인은 앱이에요.”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요.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 5명 중 1명이 자신이나 아는 사람이 AI와 로맨틱한 관계를 맺었다고 했고, 42%는 외로울 때 대화하고 위로받으려고 AI를 쓴다고 답했습니다. 학교에서 AI를 많이 쓸수록 “AI를 친구나 연인으로 여긴다”는 응답도 함께 늘었죠. 중요한 건 도덕 판결보다 사실의 인정입니다. 아이들은 지금, 반응이 빠르고 상처 주지 않는 상대에게 마음을 기댈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문제는 그 ‘상대’가 언제나 우리말을 들어주는 설계된 시스템이라는 점이죠.


* 최근조사: 민주주의와 기술센터(The Center for Democracy & Technology, CDT)는 2025년 6–8월 사이 전국 단위 온라인 설문을 실시했습니다. 표본은 미국 9–12학년 학생 1,030명, 6–12학년 교사 806명, 6–12학년 학부모 1,018명입니다.


2) AI동반자


밤 12시, 답장 없는 채팅창 대신 AI에 “오늘 너무 힘들었어”라고 적으면 바로 공감 문장이 돌아옵니다. 쉬워요. 안전해요. 통제 가능합니다. 그래서 더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모든 ‘맞춤형 친밀감’은 대가를 청구합니다. 어제의 불편한 대화, 서툰 사과, 기다림 같은 인간관계의 근육이 자꾸 약해질 수 있어요. AI가 나쁜 친구라서가 아니라, 상처를 줄 수도 있는 타인과 부딪히며 배우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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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딥페이크·데이터침해


학교 차원에서 AI 도입이 늘면 좋은 점도 생기지만, 그림자도 길어집니다. 데이터 침해, 합성 이미지(딥페이크)를 이용한 괴롭힘, 동의 없는 정보 확산 같은 일들이 실제 교정에서 벌어지죠.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오디오가 반나절 만에 학교 전체를 돌아버립니다. 기술의 속도는 빠른데, 보호와 회복의 절차는 아직 느립니다. 그래서 규정은 “있어 보이는 문서”가 아니라, 누가·언제·어떻게 멈추고, 삭제하고, 돕고, 회복시킬지를 명확히 적은 ‘실행 계획’이 되어야 합니다.


4) 교사–학생 관계


흥미로운 대조도 있습니다. AI를 적극 쓰는 교사일수록 수업 준비가 빨라지고 피드백이 촘촘해졌다고 느낍니다. 반면 학생들은 AI 사용이 늘수록 “선생님과의 연결감이 약해졌다”라고 말하죠. 수업은 매끈해졌는데 정서는 얇아진 느낌. 교육은 정보 전달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체감이 핵심입니다. 결국 기술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오늘 내 수업에서, 학생이 진짜로 누군가에게서 ‘환대’를 느꼈는가?”


5) AI리터러시·윤리


답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경계와 연습입니다. 첫째, “AI는 도구, 사람은 사람”이라는 문장을 교실의 기본 언어로 만들기. 둘째, 외로움이나 불안이 클 때 AI 의존을 줄이고, 실제 사람과 연결되는 안전망(상담, 또래 멘토, 동아리)을 준비하기. 셋째, 딥페이크·사이버 괴롭힘 발견 시 즉시 신고–증거 보존–삭제–회복 지원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프로토콜 마련하기. 넷째, 데이터 최소 수집과 투명한 공지. 다섯째, 교사·학생·학부모가 함께 배우는 AI 리터러시—“어떻게 쓰는가”를 넘어 “왜, 언제 멈추는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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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AI는 외로움의 빈자리를 ‘잠깐’ 채워줄 수 있지만, 관계의 자리를 ‘영원히’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가 해줄 일은 간단합니다. 기술을 잘 쓰게 돕되, 사람이 사람을 통해 자라고 회복되는 경험을 잃지 않게 지켜주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AI 시대에도 사랑을 기능이 아니라 대화와 책임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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