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자를 위한 변호사는, 가난한 자의 재앙이다

by 정영기

부유한 자를 위한 변호사는, 가난한 자의 재앙이다. 페루에서 떠돈 이 말은 도덕 교훈을 들이대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도 외면하는 풍경을 조용히 비춘다. 돈이 법을 “사”는 건 아닐지 몰라도, 돈이 절차의 시간을 사고, 사람의 귀를 사고, 지친 마음의 여유를 산다는 사실 말이다.


법정 밖 풍경을 떠올려 보자. 여유 있는 사람은 변호사와 충분히 상의하고, 자료를 모으고, 기일이 밀려도 버틸 수 있다. 반대로 손이 빠듯한 사람은 하루만 일터를 비워도 대가가 크다. ‘불리한 싸움’이 아니라 ‘버티기 어려운 싸움’이 되는 순간, 같은 권리도 체감은 달라진다.


그 불균형을 사람의 얼굴로 보여주는 이름이 있다. 뉴욕 브룽크스의 칼리프 브라우더. 열여섯에 가방 절도 혐의로 잡혀가 무죄 추정의 상태였지만, 재판은 오지 않았다. 그는 리커스 섬에서 청춘의 세 해를 보냈고, 그중 오랜 시간을 독방에서 버텼다. 한 기사에는 이렇게 적혔다. “리커스(Rikers) 섬에서 천일 넘게 갇혀 있었다.” 그가 겪은 폭력과 기다림의 기록은, 절차가 사람을 얼마나 쉽게 무너뜨리는지 말해 준다.


이 속담은 ‘부자 편을 드는 변호사를 욕하라’는 구호가 아니다. 누구나 같은 저울에 서도, 어떤 이는 더 빨리, 더 편안히 법에 닿고 어떤 이는 길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보라는 말이다. 시스템이 균형을 조금만 잃어도, 가장 먼저 상처받는 쪽은 늘 같다.


그래서 해답도 거창할 필요가 없다. 공공변호에 숨 쉴 틈을 주고, 돈이 없어도 자유롭게 재판을 기다릴 수 있는 장치를 넓히고, 사건을 질질 끌지 않도록 절차를 다듬는 일들. 윤리 강의가 아니라, 일상에서 체감되는 작고 분명한 변화들. 그날이 오면 이 속담은 더 이상 예언이 아니라, 지난 세대의 메모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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