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습관을 따른다”는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말은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자동 반응에 의존하는지를 정확하게 짚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다고 믿지만, 그 결정의 상당 부분은 익숙한 패턴에서 나옵니다.
카너먼이 말하는 판단의 습관은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모든 정보를 깊이 분석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 익숙한 틀, 반복해 온 방식에 기대 판단합니다. 이는 효율적인 선택을 돕기도 하지만, 때때로 잘못된 결론을 만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 보는 사람을 몇 초 만에 평가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상대의 말투나 분위기만으로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라고 단정해버립니다. 사실 그건 판단이라기보다 습관적인 반응에 가깝습니다. 뇌가 빠르게 결정을 내려 불편함이나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행동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습관이 굳어지면 새로운 정보나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익숙한 판단 틀에 갇히면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도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편견을 강화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판단을 느리게, 깊게 분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카너먼 역시 빠른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자동 반응이 지나치게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선택의 질이 달라집니다. “지금 내가 판단하는 걸까, 아니면 익숙한 방식에 끌려가는 걸까” 한 번만 물어봐도 생각은 새 방향을 틉니다.
결국 이 문장은 우리에게 작은 멈춤의 시간을 제안합니다. 습관적 판단을 잠시 옆으로 밀어 두고, 눈앞의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이 멈춤이 쌓이면 더 정교한 선택이 가능해지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불필요한 오해가 줄어듭니다. 판단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 판단이 어디서 오는지 아는 순간 우리는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사색에 잠겨 잠깐 멈춰 있는 여자
불교적 해석
카너먼의 말, “우리는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습관을 따른다”는 문장은 불교에서 오래전부터 강조해 온 마음의 작용과 잘 맞닿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 거의 없다고 설명합니다. 대신 과거의 경험, 기억, 감정이 뒤섞인 *습(習)*이 작동해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한다고 합니다. 즉 판단은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쌓여온 마음의 흔적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옵니다.
이러한 자동 반응은 불교의 ‘무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무명은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어두움 같은 상태입니다. 마음이 한순간 멈추지 못하고 자동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해석합니다. 카너먼이 말한 “빠른 판단”은 바로 이 무명이 개입하는 순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누군가를 빠르게 평가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불교의 설명이 더 선명해집니다. 상대를 보자마자 마음속에서 특정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내면에 쌓인 습관이 즉각 반응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자동 회로’와도 비슷합니다. 마음은 잠시라도 쉬지 않고 과거를 끌어와 지금을 판단하려 합니다.
이런 습관이 굳어지면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固執)*이 생깁니다. 익숙한 방식으로만 세상을 해석하게 되고, 새로운 관점이나 변화가 들어올 여지가 줄어듭니다. 불교가 집착을 놓으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집착은 판단의 습관을 강화하고, 마음을 더 좁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판단 자체를 없애라는 뜻은 아닙니다. 불교에서도 분별이 전혀 없는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깨인 상태에서의 판단’입니다. 즉 자동 반응이 아니라, 알아차림을 기반으로 한 판단입니다. “지금 떠오르는 이 생각이 사실인지, 혹은 습관인지”를 살펴보는 순간, 우리는 무명에서 한 걸음 벗어납니다.
결국 카너먼의 문장은 불교의 ‘마음 챙김’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음이 어떤 판단을 만들 때, 그 판단의 출처를 알아차리는 것. 이 짧은 멈춤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합니다. 알아차림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습관의 힘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그 자리에서 더 맑고 넓은 선택이 가능합니다. 불교가 말하는 해탈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이런 작은 해방의 순간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성찰의 순간과 습관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