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걱정으로 오늘의 잔을 엎지르지 마라

by 정영기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 때문에 오늘을 자주 망친다.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은 일,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며 지금 이 순간의 여유를 흘려보낸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맛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과 대화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다음 주 회의실에 가 있다. 걱정은 준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재를 흐리게 만드는 소음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이런 경험은 익숙할 것이다. 내일 상사에게 보고할 자료가 마음에 걸려 오늘 저녁 약속 내내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아직 수정할 시간도 남았고, 큰 문제도 없는 자료인데도 괜히 불안하다. 결국 친구와의 대화는 반쯤 흘려듣고, 집에 돌아와서는 “오늘 뭐 한 거지?”라는 허무함만 남는다. 내일의 걱정이 오늘의 시간을 조용히 엎질러버린 셈이다.


또 다른 장면도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 적응할지 걱정한 부모가 있다. 아직 아무 일도 없는데, 미리부터 실패와 상처를 상상한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오늘의 놀이 시간에도 표정은 굳어 있다. 아이는 부모의 불안을 눈치채고, 그 불안은 다시 부모의 걱정을 키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오늘의 웃음을 밀어낸 순간이다.

이 말이 내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계획과 준비는 분명 필요하다. 다만 걱정이 기준을 넘어설 때 문제가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만 하면 된다. 수정할 수 있다면 수정하고, 확인할 수 있다면 확인한다. 그다음은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까지 끌어안고 있으면, 현재의 에너지만 소모된다.




오늘의 잔은 생각보다 쉽게 엎질러진다. 한숨, 상상 속의 실패, 아직 오지 않은 후회가 그 잔을 흔든다. 하지만 오늘의 잔은 오늘만 마실 수 있다. 내일의 걱정이 고개를 들 때, 이렇게 말해보자. “이건 내일의 몫이야.”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작은 기쁨을 다시 바라보자. 그 선택 하나가 하루의 결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불교적 해석

불교적으로 보면 “내일의 걱정으로 오늘의 잔을 엎지르지 마라”는 말은 현재에 머무르라는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불교에서는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는 마음을 번뇌로 본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은 실체가 없는데, 우리는 생각 속에서 그것을 실제처럼 만들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걱정은 상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떠난 마음에서 생긴다는 점에서 이 문장은 불교적 통찰에 가깝다.

이를테면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오늘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모습은 불교에서 말하는 망념의 상태다. 마음이 지금 해야 할 일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앞날로 달아나면 괴로움이 커진다. 불교는 이럴 때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지에만 집중하라”라고 말한다. 준비가 필요하면 준비하고, 할 수 없는 영역은 내려놓는다. 이것이 무책임이 아니라 지혜에 가깝다.

또한 아이의 미래나 결과를 붙잡으려는 마음은 집착과 애착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불교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무상과, 완전히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는 무아를 강조한다. 오늘의 잔은 오늘만 마실 수 있는데, 내일의 불안이 그 잔을 엎지르게 만든다. 수행의 관점에서 자유는 걱정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걱정이 일어나는 줄을 알아차리고, 다시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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