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Ep.11] 아이와 함께 하는 부암동 나들이
한여름 날씨가 34도를 찍어대는 무더운 어느 날, 한낮의 기온이 1~2도 정도 낮아졌을 무렵,
활동적인 딸아이가 서울의 어디든 걸어 다니고 싶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엄마와 카페 데이트도 즐기는 아이는
덥다고 집안에만 있기엔 매우 좀이 쑤셨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가 열심히 찾았던 곳은 집에서 가까운 '낙산공원'이었지만,
한낮에 성곽을 걸을 것을 생각하다 보니 솔직히 더위에 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곳이 TV 어느 프로그램에서 봤던 '석파정'.
집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을 하고는 목적지를 '부암동'으로 결정했다.
물론, '낙산공원'은 더워서 걷기에 힘들 수 있다고 '백사실계곡'이 있으니 부암동이 좋을 것 같다고 설득하는 코스는 필수.
아이는 석파정보다는 계곡을 더 원하긴 했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대로 우선 움직이기로 했다.
이날의 코스는 '브런치 카페 -> 백사실계곡 -> 석파정' 이렇게 계획을 세우곤 집을 나섰다.
■ 부암동스코프 (베이커리 카페)
아이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닐 땐,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지는 않는 편이다.
주말의 늦잠을 포기하기엔 주중에 열심히 일한 내게나, 열심히 공부한 아이에게나 아쉬움이 크다.
그러니 브런치를 즐길 시간에 집을 나서곤 한다.
이날도 마찬가지.
아기자기한 카페가 많은 부암동에 도착한 후 네이버 지도를 펼쳐 맛집 검색을 했다.
그래서 찾은 베이커리 카페 '부암동스코프'.
평점이 좋은 만큼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스콘과 치즈케이크, 레모네이드를 음료로 주문하고 에너지를 채웠다.
평점이 높은 베이커리 카페인만큼 빵 맛도 좋은 집이긴 하나, 내 취향엔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레모네이드는 진심 최고였다!
■ 백사실계곡 (백석동천)
에너지를 채운 후 백사실계곡으로 향했다.
내 마음은 석파정이었지만, 트래킹을 좋아하는 아이는 계곡을 먼저 가고 싶어 했다.
지도어플을 켜고 걸어서 이동하기.
계곡 입구까지 약 20분 정도 걸어야 했다.
근데 걸어도 계곡 입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맞는 길일까?
지도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종아리 스트레칭이 될 만큼 가파른 길을 오르고 있었다.
계곡이 산속에 있는 곳이니 등산하는 느낌으로 걸었지만, 그 가파른 곳에 집들이 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얼마쯤 올랐을까?
어떤 주택 옆으로 계곡으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 길이 맞겠지?
조금 걷다 보니 '백사실 계곡'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조금 더 길을 따라 들어갔다.
'백석동천'이라는 글이 새겨진 곳이 나타났다.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은 1800년대 도성에 인접하여 조성되었던 별서 관련 유적으로 주변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지(사랑채, 안채 등)와 연못 등이 남아있으며, 인근에"백석동천(白石洞天)"·"월암(月巖)"등의 각자(刻字) 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백악산(북악산) 뒷자락에 북한산을 정면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백사골에 조성된 동천(洞天 :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의 하나로 주변에 흰 돌이 많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백석동천”이라 불린다고 전하며, ‘백석’이란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白石山)’에서 비롯된 것으로 ‘백석산’은 ‘백악산(북악산)’에서 착안된 것으로 풀이된다."
- 국가 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검색 결과 (명승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서울 付岩洞 白石洞天)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 검색 (heritage.go.kr))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 보니 넓은 공터와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고, 돗자리 펼쳐놓고 편히 쉴 수 있는 너른 공간.
이곳이 '백석동천'이라고 하는 곳이구나.
우리가 도착했을 때 어느 가족이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매우 무더운 날씨였지만, 이곳만은 나무그늘과 시원한 물이 흐르며 시원했다.
트래킹을 길게 하지 않고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라 좋았다.
물론, 좋은 점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한여름 벌레가 어찌나 많던지......
모기 기피제를 열심히 뿌리며 다녔던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시원하긴 했지만, 무수히 많은 날벌레에 지쳐 잠시 쉬고는 돌아 나왔다.
하지만, 가을 무렵에 다시 한번 찾아오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땐 충분히 트래킹을 하며 자연을 제대로 누려야지.
■ 석파정 서울미술관과 석파정
내가 부암동 나들이를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몇 번 TV에 나왔던 곳이었는데, 드디어 와보게 되었다!
솔직히 아이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덥다 보니 미술관에서 휴식을 취하자며...
이유야 어떻든 내 사심은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석파정은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통해서 관람할 수 있었다.
미술관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한국 미술 거장전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석파정에 관심이 있었지, 전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거장 리스트를 보는 순간, 눈이 크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화가 리스트>
김기창, 김정희, 김창열, 김환기, 서세옥, 신사임당, 유영국,
이대원, 이우환, 이응노, 이중섭, 임직순, 장욱진, 정상화, 천경자
전시관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도슨트의 설명을 듣게 되었다.
그림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느껴지는 것만으로 즐기는 것을 좋아하긴 하는데,
아이가 매우 관심 있게 듣기에 따라가며 그림도 보고 설명도 듣게 되었다.
설명을 너무나도 잘해주셔서 집중해서 듣게 되었고,
화가와 그림에 대한 일화 등을 들을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도슨트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다가 내 발길을 붙잡는 작품이 나왔다.
이우환 화백님의 '대화'라는 작품.
설명을 다 듣고도 이 작품이 내내 눈에 밟혀 다시 돌아가 한참을 봤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전시하는 작품.
심플한 듯하면서도 제목을 듣는 순간 너무나도 이해가 됐던 그림이기도 했다.
어쩌면 당시에 소통이 안돼 너무나도 답답했던, 대화가 필요했던 나 자신이 투영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바라보고는 3층으로 올라가 다른 전시를 봤다.
3층 전시의 주제는 빛과 관련된 작품들.
미디어 아트, 조각,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려한 듯한 느낌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찍기에 너무 좋았던 곳인데, 감상하시는 분들이 적어 조금 안타까웠다.
전체적으로 미술관 자체가 그다지 번잡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교통편이 버스로만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미술관과 작품들이 많은 이들에게 소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 끝자락에 적혀있던 문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그때의 내 상태가 떠오른다.
힘들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여유가 더욱 소중하다는 느낌도 함께.
다시 한 층을 올라가니 석파정으로 향하는 입구가 나왔다.
미술관 밖으로 나오면 내려보는 전망을 볼 수가 있었고, 이곳이 꽤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디로 가야 석파정에 이를까, 싶을 때, 너른 바위 넘어 계단이 보였다.
앞에는 석탑도 있었고, 산속 계곡물이 흐르는 듯한 풍경도 보였다.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한 곳이라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개인이 썼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씁쓸해지기도 했다.
조금 더 올라가면 TV에서 봤던 정자가 나올 것 같았는데 아이가 무더위에 지쳐버렸다.
그 정자가 하이라이트일 건데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워 조금 휴식을 취한 후 그것만 보고 가자고 아이를 꼬드겼다.
아이는 마지막 힘을 다해 걸었다.
마침내 정자가 나타났을 때 감탄사만 흘러나왔다.
보기만햬도 조선시대라기보다는 근대시대에 지어진 느낌이 들었는데 우거진 숲과 매우 잘 어울렸다.
이곳에서 글을 쓰곤 했다던 흥선대원군의 모습을 상상했다.
무척이나 낭만적인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자에서 주변 풍경을 찬찬히 둘러봤다.
두꺼비 조형물도 보이고 뮬이 흘러가는 소리도 들리고.
혼자서 누린다는 건 진심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개방되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빌딩숲,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에 이러한 곳이 있어 팍팍한 삶에 숨을 쉴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이곳을 뒤로하고 짧은 나들이를 마무리했다.
서울에 오래 살았지만 아이 덕분에 이런 곳도 찾아가는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가을이 오는 요즘, 짧게나마 서울을 탐방할 좋은 시간이 도래한 듯.
다음엔 어디로 향할지 아이와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