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사람의 조건

맞을 각오를 해라

by 하룻강아지

되는 사람의 자질은 한가지다.

때리고 싶으면 맞을 각오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소위 리스크를 진다고 하는데, 리스크를 진다는 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볼 수가 있다.

첫번째는 남의 눈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두번째는 손실을 감내하는 것이다.



먼저 남의 눈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이건 보통 부모와 친구의 눈이다.



무자본창업을 한다고 주위에 얘기하면 대개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다단계에 걸렸다거나, 너 그렇게 살면 인생 망한다거나, 이런저런 반응들이 온다.

그런데 사실 이건 무자본창업을 선택했을때만 오는 반응은 아니다.

나는 꿈이 여러가지 있었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다.

처음엔 농구선수였고, 다음엔 프로그래머, 그 다음엔 가수, 그리고 그 이후로 반대에 부딪혀서 꿈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나중에 외국계기업에 가겠다는것조차 주변에서 반대했었다.

넌 외국 갔다온 경험도 없는데 무슨 외국계기업에 가냐고.

그런데 웃긴 건, 그 사람들은 외국계기업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멍청하게도 나는 그 조언 아닌 조언을 귀담아듣고 외국계기업에 갈 생각을 접었었다.



참 병신이었다. 병신도 저런 병신이 없는데,

이제 와서 알게 된 일이지만 주변사람들은 내가 뭘 한다고 해도 대개 응원해주지 않는다. 내가 자발적으로 살려고 하면 반대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그런 조언들은 보통 숨만 쉬고 살라는것과 같다. 그들은 내가 당연히 살아야 할 인생밖에 제시해줄 수가 없다. 그들이 살아본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 조언들은 별로 들을 가치가 없다. 그 사람들이 제시해 주는 길을 걸었다가, 일이 잘못된다면 그들은 그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잃는 것은 나의 인생이다. 그들의 인생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은 함부로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인생에 지적질을 하는 것임.

도박판에 건 건 내 판돈인데, 지가 잃는 게 없으니까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는 거다.



그 사람의 인생을 보면 그 사람이 하는 조언의 결말이 나온다.

만약 그 사람의 인생이 내가 본받을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 조언을 들어서는 안된다.

주변사람이 만약 내 결심이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애정을 빙자해서 감성팔이를 시작할 것이다.

친구의 정이나 가족의 정에 호소하면서 내 결심을 흐리게 할 것이다.

너는 죄책감도 없냐, 어떻게 니가 이럴 수가 있냐. 내가 널 어떻게 봐왔는데, 혹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결정을 하냐.

그 감성팔이를 듣고 내 인생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접고 그냥 남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무시하고 내 인생을 계속 갈 건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다만 남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살다가 실패한다면 남들은 책임져줄 수 없고,

내 인생을 계속 가다가 성공하면 남들은 역시 넌 될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판단력이란 이처럼 쓸모없다. 마음속에서 부정적인 소리를 지껄이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음.



이제 두번째 이야기를 해보자. 손실을 감내하는 것.

위에서 남들의 참견에 굉장히 공격적으로 써 놨는데,

사실 저 참견에 수긍하는 건 나다. 저런 참견에 수긍한다는 건 내가 손실을 감내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려면 망할 각오를 해야 한다.사람이 보통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안정적인 일이 아니다. 누가 산업시대의 톱니바퀴로 구르다 삶을 마감하기를 원하겠는가?

그렇지만 뇌는 지극히 계산적이라서, 원하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중 항상 후자에 비중을 둔다. 그래서 해야만 하는 것을 하면서, 이걸 끝내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가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적당히 자신을 주장하는 것이다.



남들의 기준에 맞추는 게 내 주장을 하는 것의 선결조건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남들이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서 부의 추월차선 읽고 시크릿 읽고 열심히 상상하다 잔다. 남들의 프레임 안에서는 행동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게 상상밖에 없다. 결국 행동을 안 하기 때문에 안 된다.

혹자는 지름길을 찾는다.

하도 사람들이 레버리지 레버리지 해서 레버리지를 읽었더니, 레버리지의 핵심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슨 지름길이 아니라 지름길이 없다는 게 핵심이었다.



무엇을 시도하건, 시도하는 국면마다 항상 뇌는 먼저 앞질러나가서 이런저런 계산을 때릴 것이다. 심지어 체육관에 등록해서 운동하는 사소한 것조차 계산을 때린다.

그런데 그 계산때리는걸 듣고 아, 이건 이렇게 될거니까 어차피 안되겠다. 하면 안되겠다.

고 생각해 거기서 멈추면 영원히 발전이 없을 것이다. 설령 여러가지 자원을 갖고 있어도 안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한다.

머리로 이런저런 계산을 때려봤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다.

그래도 그걸 몸으로 겪는 건 또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그걸 시도하는 거다.

결과가 결국 예상한대로 안좋게 나왔지만, 다음에 뭔가가 또 떠올랐을 때 머릿속으로 계산 때리지 않고 또 시도한다. 그러다 분명히 안 될 일인데 어떻게 아다리가 맞아서 되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행동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아, 하니까 되는구나. 의 사고회로가 자리잡게 된다.

확률은 낮긴 하지만 어쨌든 하니까 되는구나! 가 자리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되는 사람은 계속 되고, 안되는 사람은 계속 안된다.

둘의 공통점은 둘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때렸다는 거고, 둘의 차이점은 그래도 한 놈은 계산 딱 떨어졌는데도 그냥 손해를 보자면서 그 행동을 한 거다. 결국 '손해를 감수하면서' 하는 놈이 된다.



리스크에는 이렇게 두가지 측면이 있는데, 둘 다 감정적으로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무엇을 도전하건 도전의 처음에는 그것을 숨기고, 극단적으로는 거짓말하고 회피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성과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좋다. 남이 들이대는 부정적인 증거는 언제나 내 주관적 희망을 압도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성과가 남들이 들이대는 부정적인 증거만큼 커지면, 그때 남들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나도 그렇고 고객들도 그렇고, 처음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주변에 이야기하고 응원을 받고싶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주변인은 백이면 백 응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뭘 하는지, 처음에는 남들에게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상만 입고 아무런 긍정적인 효과가 없음.



인생을 개척하는 이런 식의 결정은 무자본창업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롯데월드에 가서 자이로드롭을 타는 것만큼 어렵다.

하지만 자이로드롭을 탄다고 죽지는 않는다. 그것이 마치 죽는 것처럼 생각될지언정 온갖 안전장치가 다 있고, 결국 땅에 무사히 착지한다.

창업도 무자본으로 시작하는 전제가 있다면 자이로드롭을 타는 일과 같다.

어차피 망해도 빚이 생기지 않고, 잃는 것은 내 시간과 인생 전체로 봤을 때 약간의 돈밖에 없으니 얼마든지 안전하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도전할 수 없다면(결과를 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스스로를 바꿔볼 생각을 한다고 입으로는 부르짖으면서 속으로는 지름길을 찾는 표리부동한 사람일테니, 그런 사람들은 결국 안될 것이다.



되는 사람은 언제나 인생에 리스크를 건다.

안 되는 사람은 언제나 변명한다.



결국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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