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권은 내 두 손에 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교회에 다녀서 그런지 '신'의 개념은 내게는 아주 익숙한 것이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수호천사처럼 지켜봐주고, 항상 돌봐주며 인도해준다는 그런 개념 말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가. 그런 게 정말 있었으면 한다.
나는 그런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라서 사업을 하겠다고 할 때는 그게 '우주'로 왔다.
왜 그런 책 많지 않은가. 우주의 도움을 받아서 빚을 갚았다. 사업이 번창했다.
긍정적인 말을 했더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던가. 이런 것들 말이다.
물론 긍정적인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건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영성에 깊이 의존하게 되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 다음에는 좋은 일이 일어날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규칙성이라던가, 뭔가가 나를 좋은 쪽으로 인도해준다던가 그런 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번 주 내내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6개월간의 암흑기를 뒤로하고 들어간 회사라 그런지 기대도 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거라고.
그렇지만 돌아온 건 계속되는 야근이었고, 아마 이 회사를 나가기 전까지 계속될것이다.
신이 있다면 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야근 좀 했다고 이러는 건 아니다ㅋㅋㅋ
소위 영성을 한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대로 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왜 신은 나를 죽이지는 않으면서 계속해서 끊임없는 고통만 주는가?
왜 내가 원하는 것은 단 1mm도 허락하지 않으면서, 바라지 않았던 것들만 인생에 넣어주는가?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할 때 뱀을 주는 아비가 어딨냐. 너네 신이 그럴 것 같냐?
어. 내 신은 그러는 것 같은데.
떡인줄 알고 깨물었더니 안에 압정 한움큼씩 들어있던데.
나중에 성공하기 위해서 '신이'지금 나를 연단한다고? '하늘이' 나의 그릇을 키워주려 한다고?
아. 물론 매우 최근까지도 그런 걸 믿었다. 소위 도덕경이니 뭐니 하는 것들 말이지.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신을 원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이 안좋아지지.
대체 신이란게 존재한다면 내게 왜 그런 일련의 과정을 허락한건가?
그러니 신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있어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궁지에 몰렸을 때 신을 의지했다가는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구렁에 밀어넣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신을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뼛속 깊이 후회하는 그 일은 적어도 내 인생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다가오고, 마음이 쓰리다 못해 썩는 것 같아도 내 두 손과 두 발은 움직일 수 있다.
두손 두발을 움직일 수 있다면, 나는 내 삶에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뭐라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물론 두손두발에 자유가 있어도 선택권이 없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한국은 안 그렇다.
야근이 싫으면 내발로 회사를 나와서 다른 데 취업하면 된다. 그럴 선택권이 내게는 있다.
신한테 구해달라고 비는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직장을 옮길 수 있다는 거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는데, 신이 있다고 믿음으로써 내 통제권 밖의 일처럼 받아들인다.
특히 영성서적에 깊이 빠졌다면 더 그렇다. 이 모든게 운명이라고. 흘러가는 흐름이 있다고.
그런 건 없다. 내 삶은 영성서적대로 그렇게 예쁘게는 안 흘러가더라.
내 손과 발을 움직여 해낼 수 있는 일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손과 발을 움직여서 행동으로 뭔가 바꿀 수 있다면, 그걸 하면 된다.
그렇지만 행동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게 편하다.
나는 외모에 열등감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얼굴을 성형하고, 몸을 만드는 것이다.
부작용이나 몸이 잘 안만들어지면 어떻게 하냐? 에 대해서는 생각할 바가 못된다.
왜냐면 그건 내가 행동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확률을 최소화하는 행동을 취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행동으로 어떤 결과를 100%이끌어낼 수는 없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그러면 회사를 다니면서 최대한 책을 읽고 공부하며 나만의 무기를 만드는 것이 옳다.
기회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신을 믿음으로써, 내가 행동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에까지 은총을 내려달라고 빌고,
더 나아가서 내가 행동으로 아예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까지 소원을 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내가 지금 행동으로써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만 생각하자.
내가 태도를 바꿈으로써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만 생각하자.
모호하고 보이지도 않는 신에 의지하면서, 계속 탄식만 하느니 말이다.
나는 신에게 자전거를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신은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훔쳤고,
난 자전거를 갖게 되었다.
-알 파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