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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룻강아지 Aug 21. 2024

행복을 찾아서 2

영원은 있다

*삶이 극도로 허무한 사람을 위한 글이다.

*당신에게는 희망이 있다.



만약 이전 글을 읽지 않고 이 글을 보신 분이라면

반드시 읽고 와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왜냐면, 이 글은 현대철학과 유물론적 사고관, 거기서 파생된 참나영성이

어떻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글이기 때문이다.

이전 글 링크 :: https://brunch.co.kr/@metalcsh/83 



이전 글에서는, 현대사회의 세 가지 주장이, 어떻게 '내 생각' 이 아닌지 살펴보았다.

1. '내가 되고 싶은 나 자신이 되자'

2. '인생은 한 번 뿐이니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후회없이 살자'

3. '내면 안에는 신이 있다'



또한 이전 글에서 우리는 위 세 가지 주장이 어떻게 행복을 줄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위 세 가지 주장으로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은, 이제 어떡하면 좋은가?



주관적인 경험상, 위 세 가지 주장이 삶의 편의는 가져다줄지언정

진정한 행복, 내 존재이유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꿰뚫어보게 된 사람이라면,

그는 반드시 절망하게 된다.



필연적인 절망과 함께 그의 소망은 달라진다.

절망은 기존의 소망이 불가능하고, 불완전함을 깨달았을 때 일어나니까.


1. 그의 소망은 시공간상 유한한 인간의 운명 아래서,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모두 되자' 가 아니게 된다.

그래서 그에겐 돈이 삶의 목표가 되지 못하게 된다.


2. 그의 소망은 '인생은 한 번 뿐이니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후회없이 사는' 게 아니게 된다.

그래서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최대한 많은 여자와의 섹스가 아니게 된다.


3. 그는 '내면 안에는 신이 있다' 는 걸 믿지 않게 된다.

그는 자신이 신이라고 불릴 만큼 신성해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을 신성하다고, 영험하다고 한다면 자신은 그 평판을 이용해 돈과 여자로 대표되는 생존본능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걸 꿰뚫어보기 때문이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이렇게 변한다.

1.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에 대한 갈망,

2. 그 영원성으로부터 느끼는, 삶의 어떤 조건에 서 있더라도 느끼는 괜찮음(=평안함)

3. 그 평안함에서 나오는,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러나 그는 절망적이다.

그는 영원성, 평안함,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걸 이룰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는 걸 깊이 깨닫기에,

이 무력감이 그를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성경은, 그가 복되다고 얘기한다.

그는 드디어 '좁은 문' 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저 성경구절을 모르더라도,

그는 자신이 시도했던 모든 방법들이 허무하게 무너져내리는 걸 바라보며,

이제 더 이상 '넓은 문' 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좁은 문' 을 찾게 된다.



그의 심리상태는 이렇다. 허무와 공허가 500kg짜리 바벨처럼 가슴을 짓누르고 있어,

숨을 내쉬기만 해도 가슴이 불타오른다.

이제 죽는 것 말고는 벗어날 방법이 없다.

넓은 문의 방법들은 먹히지 않았고 좁은 문은 찾을 방법이 없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몸부림을 보고 예수는 이렇게 초대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런 상황에서 예수의 초대를 받으면, 그는 예전에 가졌던 비판의식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예수가 했던 말을 진지하게 검토한다.

그의 상태는 이미 성경에 묘사되어 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만약 예수의 초대를 받게 된다면(사실 당신은 이 글을 읽음으로 이미 초대를 받았다)

이 대목에서 문제가 생긴다.

1. 과연 그가 시공간을 초월해 영원한가?

2. 그가 내게 환경에 제약되지 않는 절대적인 평안을 주는가?

3. 내 마음이 어떻게 그를 믿음으로 생존본능에서 벗어나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가?



하나씩 풀어가보자.




1. 과연 그가 시공간을 초월해 영원한가?


예수가 시공간을 초월해 영원한가? 는 예수가 신인가? 를 묻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신이라고 주장하고 싶으면, 2가지를 논증해야 한다.

첫 번째는, 그는 4대 성인 같은 게 아니라는 것.

두 번째는, 그는 신이라는 것.



ㄱ. 그는 4대 성인이 아니다.

그가 4대 성인이 아닌 것은 그의 말과 행동 때문이다.

그가 신이 아니라면, 그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다. 그 논쟁이 요한복음에 아주 잘 나와있다.

예수는 "내가 진짜 신의 아들인데 너희는 왤케 나를 못 믿냐 이 답답한 새끼들아" 라는 입장으로,

유대인들은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라는 입장으로 논쟁하는 게 요한복음이다.



예수의 언행을 보고, 신이라는 입장을 배제한 뒤

그가 4대 성인에 가까운지, 미친놈에 가까운지를 판단해보자.



이 언행은 예수가 죽은 뒤 몇십년도 되지 않아 기록된 4복음서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고대 역사 기록에서 1세기(100년) 혹은

그 이상의 격차가 생기는 것은 매우 빈번한 일이다.

몇십년 정도면 신빙성이 매우매우 높은 기록이며,

오늘날 예수의 실존여부는 너무 명확해 무신론자의 대표주자 리처드 도킨스조차

예수의 실존에 대해 반박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유대인의 논쟁을 보자.



ㄱ-1. 나는 하나님과 동격인 사람이다

[예수께서 저희(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어긴 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참고로 유대 문화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동격으로, 아버지의 모든 권위를 아들이 그대로 상속받는다.

예수가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얘기한 건, 내가 하나님과 동격이란 소리다.

예수를 신으로 인정할 수 없는 유대인들은 당연히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유대인의 제일가는 범죄는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ㄱ-2. 구약성경 전체가 내게 대한 것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ㄱ-3. 난 몇천년 전에도 살아있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분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은 예수가 나기 몇천년 전 사람이다)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는 자기가 마치 진짜 신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 같은 게 아니다.

그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그는 그냥 미친놈이다.



다른 4대성인과 비교해보자.

공자는 인간의 도덕적 덕목을 강조하며,

인, 의, 예와 같은 덕목들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본질을 탐구하며,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의 대화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게 하여, 진정한 지혜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었다.



석가는 인생의 고통을 인정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집-멸-도로 불리는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몇 천년 전부터 내가 있었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신의 아들이다'

라고 말하진 않는다. '예수' 라는 이름표를 떼고 저 말들을 보면 미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래서 그는 4대 성인 같은 게 아니다. 그는 신이 아니면 미친놈이다.



ㄴ. 그는 신인가?


현대사회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그 중 진리가 있다면 어떻게 진리를 가려낼 수 있을까?

그 종교들 간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찾으면 된다. 그 결정적인 차이가 예수다.



기독교를 제외한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타 모든 종교는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4대 성인' 혹은 '매우 훌륭한 사람' 이다.

(그치만 우리는 위에서 이미 그가 신 아니면 미친놈이라는 걸 살펴봤다.)



오직 기독교만이 예수를 신으로 인정한다. 아. 이렇게 쉬울 수가.

예수가 신이면 나머지가 구라고, 예수가 신이 아니면 기독교가 구라다.



예수는 마치 이 '진짜 종교 가려내기 배틀' 을 예측하기라도 한 것 같다.

요한복음에 이런 말이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저 말은 이런 말이다.

나를 통과하지 않고는, 진짜 신을 믿을 있는 자는 없다.



자, 그럼 예수가 신이란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가 기적을 베풀어서? 기적은 다른 종교에도 많다.



스티브 잡스가 애독했다는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책을 읽어보면, 그의 책에도 많은 기적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내가 일했던 명상센터도 기적을 일으켰다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기적의 사례들이 보고된다.

그래서 기적은 유일한 종교를 가려낼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그가 한 일 중에, 그가 신의 아들임을 증명한 일은 단 한가지다.

부활이다.



즉각적인 반박이 떠오른다.

환생이나 임사체험이라면, 부활이랑 삐까뜰 수 있는 거 아니냐?



아니다. 환생이나 임사체험이 예수의 부활에 미치려면 조건이 좀 더 엄격하다.

예수의 부활과 견주고 싶으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1. 중대한 육체적 손상으로 인한 사망.

2. 죽기 한참 전부터 죽었다 살아날거라는 예고를 함.

3. 죽고 나서 사람들이 같은 사람으로 인지할만한 유사성을 가진 몸으로 부활.



그럼 그가 부활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주장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단군신화같은 얘기를 제정신으로 믿는다고?

이런 얘기를 믿는 사람은 아마 아이큐가 자기 체중과 같을것이다.

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 여기까지 글을 읽어준 사람이라면, 내가 꽤나 제정신이라는 데 동의해줄 것이다.

(아...아닐 수도 있다ㅋㅋㅋ)

하지만 나는 아무런 지적인 권위가 없으니, 지적인 권위를 좀 빌려오겠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라이오넬 럭후' 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변호사' 로 지금도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데,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most-successful-lawyer/



그는 1940년부터 1985년까지, 45년동안 245건의 살인 혐의 기소에 대해 연속으로(!)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바가 있다. 기록 덕분에 그는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그는 최고 수준의 논리 구사 능력과 법적 증거를 판단하는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가 평소처럼 신나게 무죄판결을 받아내던 어느날,

누군가에게 '당신의 뛰어난 법률적 능력으로, 예수의 부활을 조사해달라' 고 요청받았다고 한다.

그는 흔쾌히 이를 수락하고, 약 2년간 이를 조사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I say unequivocally that the evidence for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is so overwhelming that it compels acceptance by proof which leaves absolutely no room for doubt."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는 티끌만큼도 의심할 수 없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분명해서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회심해버렸다.



나는 나중에야 이 사람을 알게 되었으나, 나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예수는 부활했으며, 그는 신이다.



우리는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세 가지 과제 중 첫번째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1.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에 대한 갈망,

2. 그 영원성으로부터 느끼는, 삶의 어떤 조건에 서 있더라도 느끼는 괜찮음(=평안함)

3. 그 평안함에서 나오는,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분량 초과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여러 증거와,

그가 부활했다는 게 대체 내 힘든 삶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라는 주제를 다음 글에서 다뤄야 하지만 한가지 얘기해주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의 영원성에 대한 갈망은 충족될 수 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4-29



다음 글에 계속

https://brunch.co.kr/@metalcsh/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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