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에 올인할 수 있으세요?"
퇴사 후,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와 출판사를 차리려고 준비 중이다.
이제 겨우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음을 느낀다.
아무리 작은 출판사라지만, 신경 써야 할 게 산더미고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저자는 이미 몇 명 섭외했고, 새로운 콘텐츠도 구상 중이지만, 그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다니던 회사를 나올 때, 그전에 기획해 계약했던 저자 둘을 대표는 흔쾌히 넘겨줬다.
내가 계약했으니 내가 책임을 지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어차피 콘텐츠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고, 내년 후반기에 진행할 거리가 필요하긴 했다.
사실 회사에서도 당장 담당자가 없으니 골칫거리긴 했을 것이다.
감사하다고 넘겨받았는데, 확실히 넘겨받았다고도 할 수 없다.
아니, 저자들의 동의 없이 바로 내 콘텐츠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먼저, 퇴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쯤에는 신나서 저자들에게 연락했다.
“저희랑 하시죠. 그냥 하시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저자들도 처음에는 좋다고 했다.
어쩌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차피 편집자님 보고 진행한 거니까, 그게 낫겠네요.”
그런데 막상 출판사를 준비해보니 만만치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회사에 속해 있을 때야 여러 이유로 서둘러 계약을 추진하곤 했지만, 이젠 내 비용이고 내 매출에 직결되는 것이다 보니 좀 더 계산기를 두드리며 면밀히 살펴보게 되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출간 의미에 좀 더 비중을 뒀다면, 이젠 매출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한 저자는 회사에 있을 때 원고가 많이 밀려서 원고 독촉을 했던 저자인데, 결국 우리와 진행하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 독촉으로 인한 '마상'이 여전히 남은 듯했다.
회사가 압박해서 어쩔 수 없이 독촉했던 거긴 하지만 내가 군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저자는, 살펴보니 책을 내도 판매가 잘 되리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좀 소극적으로 대했다.
저자가 바로 전에 출간한 책의 판매가 저조한 것도 판단의 척도였다.
일단 창업 준비로 골치 아픈 상황이라 다른 문제는 접어두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제 막 사무실을 마련했을 때쯤 그 저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간 연락을 하지 못한 것도, 안 한 것도 있어서 일단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그 저자는 소극적이었던 태도에 뿔이 난 느낌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전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 품은 불만을 내게 이야기했다.
"출판사가 아무것도 안 해요. 진짜 너무 실망했어요."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출판사도 할 만큼 한 걸로 보였다.
각종 행사나 전시회를 열고 온라인 스트리밍 '저자와의 만남'도 진행했으며, 온라인 서점 메인 광고도 진행한 걸로 알고 있다.
출판사가 그 정도 했으면, 사실 더 할 게 없다.
아니 더 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정도 했는데도 안 팔린 책을 두고 더 많은 마케팅을 진행할 출판사는 없다.
"제 책 진행하면, 올인할 수 있어요? 그럼 계약하고."
진땀이 흘렀다.
그 이상 할 수 있을지 확답을 할 수 없었다.
초보 저자들은 종종 착각한다.
내 기획은 매우 신박하고, 그래서 출간만 하면 출판 시장을 뒤집어 놓을 거라고.
내 책이 안 팔리는 건 출판사가 노력을 안 해서라고.
본인의 역량은 생각하지 않고 출판사 탓만 한다.
우리나라 출판 시장은 급격히 변화했다.
다들 잘 알겠지만, 작아도 너무 작아졌다.
그렇다 보니 저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해졌다.
저자의 글 쓰는 능력?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글 쓰는 능력이 출중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팔로워다.
말하자면, ‘찐팬’.
찐팬 없는 저자가 출판 시장에서 대박을 치기란 개천에서 용 나는 수준이다.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지만, 내 생각엔 그렇다.
출판 시장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예술계 속설 중엔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먼저 유명해져라. 그럼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실제로 '피에르 만초니'라는 작가의 '예술가의 똥'이라는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도 있다.
팔로워가 없는데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 시장의 탑에 오르는 건 이 작은 출판 시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출판사는 책이 시장에 나왔다고 시중에 홍보했을 때 판매 곡선을 보고 더 많은 마케팅을 추진할지 결정한다.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면, 더는 노력을 쏟을 수 없다.
이미 막대한 비용을 들였는데(저자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반응 없는 책에 더 노력과 비용을 들일 수는 없다.
이러한 것은 출판계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큰 기대로 출시했더라도 반응 없는 제품에 손해를 각오하고 큰 비용을 들일 기업은 없을 것이다.
출간을 홍보했는데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
마케팅 부족도 원인일 수 있지만,
자신의 글이 매력 없다는 의미라는 것을
저자는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그 원인일 가능성이 더 크다.
결국, 나도 그 저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계약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판매 때문만이 아니다.
글이나 콘텐츠의 퀄리티가 낮은 것도 문제였고...
결정적으로, 서로가 신뢰할 수 없게 된 일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어쨌든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저자와 우리도 함께할 수 없다.
물론 저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정적이지 않은 우리와 함께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올인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기도 하겠지.
그렇다고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한 것도 아니고.
나와 보니 밖은 더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