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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실주인 Jun 15. 2020

다이어트!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가난하다고 왜 미에 대한 갈망이 없을까.

‘교대 근무에 종사하는 근로자 하루 평균 300kcal 더 섭취’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그러고 보니 담장 안 야근부의 교대 근무(변형된 4부제 주-야-비-윤)를 하고부터 내 몸무게는 부쩍 늘은 것 같았다. 식습관이 아침을 챙겨 먹는 패턴은 아니었는데, 야근을 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비번날 아침을 꼭 챙겨 먹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도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는 거 보니 저 신문기사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다이어트'

직원 샤워장에서 몸무게를 재봤는데 근 1년 사이 몸무게가 3kg가 넘게 불어 있었다. 역시나 으레 것 평생 해오던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순찰 돌 때 내 무릎이 나를 버거워하고, 바지를 갈아입을 때마다 허리에 뻘겋게 눌린 자국 때문만은 아니었다. 너무나 동글동글 해진 얼굴, 올챙이를 연상시키는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 처진 엉덩이,  관리가 전혀 안 돼 있는 모습이었다. 결심했다. 역시나 해오던 것이고 언제나 내일부터 시작할 다이어트지만, 이번만큼은 반드시 성공하리라


수용자 두 명이 구매물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한쪽은 두유만 박스채로 있었고 다른 한쪽은 딸기만 잔뜩 있었다. (영치금으로 과일, 라면, 빵, 과자 커피 등을 살 수 있다. 물론 한도와 정해진 날이 있다.) "뭐냐? 너네 왜 이렇게 구매물이 극단적이냐?"라고 물으니 다이어트를 하는데 한쪽은 두유만 먹는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딸기만 먹겠다고 했다. 서로 자기 방법이 효과적이라는데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일주일간 시행해보고 비교해보기로 했다고 한다. 두유는 영양가가 높고 칼로리도 낮아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측과 다이어트는 지속 가능해야 하는데 두유는 질려서 힘들다고 맛과 영양이 중요하다는 딸기 측이었다.


딸기 VS 두유

1일 차, 서로가 서로의 방법에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거울을 살피며 조금 빠진 거 같다고 좋아했다.

2일 차, 아직 까진 순항 중이다. 서로를 놀리는 여유가 있다. 서로 역시 자신이 옳았다고 우기며, 자기가 하는 방법은 100일도 가능하다고 허풍을 늘어놓는다. 거울을 보면서 살이 빠졌다는 착각도 이틀 연속이다.

3일 차, 자강두천이 만났다. 표정에서 힘들어하는 게 보인다. 그래도 서로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주장한다. 식사 시간마다 온갖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찌푸려도 역시나 좋다고 한다. 거울을 보며 갸름해진 얼굴에 만족해한다. 표정과 언행의 완벽한 불일치도 웃기지만 정말 살이 많이 빠진 걸로 착각하는 게 웃기다. 몰래 저녁에 야식 챙겨 먹나 의문이 들었다.

4일 차, 하루 만에 부쩍 말랐다. 어제까진 몰랐는데 오늘은 확실히 어제와 차이가 났다. 4일 차 둘 모두 얼굴이 확연하게 갸름해져 있었다. 딸기나 두유 모두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두 피실험자를 관찰하고 두유와 딸기를 주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원푸드는 힘드니 아침저녁은 두유 점심은 딸기만 먹기로 정하고 나름의 계획을 세우던 찰나. 둘은 음식을 서로 나눠먹고 있었다. 나흘 째가 되니 사람 할 짓이 아닌 거 같다고, 도저히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나눠서 먹겠다고 했다. 나는 딸기와 두유를 주문하기로 한 결심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5일 차. 둘의 구매물 표에 딸기와 두유는 사라졌다. 단백질을 섭취해야 할 때라는 논리로 소시지와 떡갈비를 주문하는데, 그 옆에 라면과 빵에도 체크표시가 돼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남은 두유와 딸기를 다른 수용자의 라면과 바꾸기 시작했다.

6일 차, 오늘은 수용자 점심식단이 제육볶음이었다. 세숫대야 같은 곳에 두 명분의 밥과 제육볶음을 넣더니 간장과 참기름 고충장을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식후 후식으로 딸기와 두유를 먹어댔다

7일 차, 이미 다이어트는 포기했다. 그리고 처음 시작한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조금 찐 것도 같았다. 거울을 보더니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원푸드의 위험을 몸소 체험했다며 점심은 점심식단으로 먹고 저녁에만 두유를 마시겠다고 한다. 딸기를 선택했던 수용자는 저장성이 좋지 않아서 오래 하지 못할 것 같다며 두유를 주문하겠다고 한다. 절대 두유가 더 좋아서 그런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역시나 다이어트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디서나 하는 것인데 몸은 그대로 거나 조금씩 늘어간다. 참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효과적인 것을 떠나 이들은 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일까. 잘 보여야 할 여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 한들 만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출소할 날을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과 시간에 맞춰 일어나 일을 하고 일과 종료 후 다시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거의 매일 같은 패턴이다. 이 중에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결심을 할 만큼 자극받는 일이 있었을까.


필리핀 빈민가로 단기선교를 갔었던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나눠둘 음식과 옷가지, 모자, 휴대용 선풍기 등을 챙겼는데 의외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틴트였다. 틴트를 챙겨갈 때만 해도 당장 먹을 게 부족한 빈민가에 틴트가 무슨 소용일까 생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가난하다고 왜 미에 대한 갈망이 없을까.

그랬다 담장 안이라고 왜 미에 대한 열망이 없겠는가.


담장 안에서 다이어트하는 수용자

하루 종일 수용자만 보는 데도 아침 일찍 왁스를 바르며 정갈하게 하루를 준비하는 직원

헤어 스타일도 트렌드에 따라가고 싶어 하는 수용자

파마가 풀렸다고 미장원에 가시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얼굴에 남아 있는 어느 할머니

어차피 더러워질 작업복임에도 색상과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인부

공적 마스크를 사면서 검은색은 없냐고 묻는 청년, 검은색이 더 간지 난다고 한다.

같은 교복임에도 핏은 전혀 다르게 입는 학생들


“주말에도 일하느라 여자 만날 일도 없는 놈이 다이어트는 뭐하러 하냐.”

이런 멍청한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똑같이 질문해주고 싶다.


"어차피 쌀 거, 뭐하러 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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