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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실주인 Jun 29. 2020

어느 보이스피싱범과의 대화

돈은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고 연약함은 우리 이성에 빈틈을 만든다.

이 글은 절대로 가해자를 두둔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미리 밝힌다.


"보이스피싱범 재범률은 3%가 넘지 않는다고 해요. 저도 다시는 손 안 댈 겁니다."

"담장 안에 있으니 당연히 그런 생각이라도 해야지?"

"아니에요, 정말 진심이에요."

진심을 다해 다짐하는 것 같았다. 속는 셈 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보이스피싱은 조직마다 상이하긴 하지만 크게 총책, 중간책(혹은 콜책), 대면책, 인출책으로 나뉜다.

총책, 사무실과 조직 시스템을 정비하고 보이스피싱에 들어가는 기본 자금을 댄다.

중간책, 직접 전화를 돌리거나 콜책을 관리하면서 대면, 인출을 지시 감독한다.

대면책, 직접 피해자를 만나는 역할로 금감원이나 검찰 직원을 사칭한다.

인출책, 중간책의 지시에 따라 은행에서 돈을 찾거나 송금한다.


내가 데리고 있었던 보이스피싱범은 대부분 인출책이었고 간혹 콜책과 대면책이 있었다. 이들은 비교적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는데, 대학생이나 취준생이 고수익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얼떨결에 보이스피싱을 시작한 경우였다. * 혹시나 ‘내가 데리고’라는 표현에 나를 총책으로 오해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택배 포장 월 300 고수익 보장'

지하철 찌라시 광고나 혹은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고다. 대부분의 인출책들은 이 광고에 현혹돼 보이스피싱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된다.

"저런 걸 믿냐? 딱 봐도 의심스럽잖아."

"저도 알죠......"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걸 시키면 경찰에 신고하고 바로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에 광고지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면접을 보러 오라 해서 얼떨결에 찾아갔다. 처음에는 정말 택배 포장하는 일을 시켰다. 의심스러울만한 것들이 눈에 띄지 않았기에 마음이 안정됐고, 월 300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력을 쌓고 하다 보면 300도 가능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택배 포장을 하는데 잔 심부름을 시켰다. 카드를 주면서 은행 가서 돈 좀 인출해 오라 했다. 업무시간 농땡이를 피울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별 의심 없이 돈을 찾아다 주었고, 다시 택배 포장을 했다. 이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이 후로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됐다. 그 후로 은행 심부름이 잦았고, 수고비라며 인출한 돈의 몇%를 줬다. 시간이 지나면 %를 높여준다고 했다.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한 주에 60만 원이 넘는 돈을 너무 쉽게 벌었고 그렇게 돈 버는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앞에 형사가 찾아왔다.





이들은 푼돈 조금 쉽게 벌었던 대가로 징역을 살았다. 천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인생의 꽃다운 시절 2년과 맞바꾼 셈이다. 처음에는 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다 인식하지 못했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쉽게 돈을 버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미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곱게 그만둘 수도 없었고, 그만둔다 하더라도 보복성 신고로 징역행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현상태만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윗 선 말만 잘 들으면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기대를 품었을 것이다.


불안함은 사람의 연약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온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찾아온다면 사람은 쉽게 무너진다. 이들도 비슷한 심정이었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다. 유흥비를 쉽게 벌고자 손댄 사람도 많다.) 사람의 연약한 부분을 건드려 나락으로 빠뜨리는 이 범죄, 콜책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났다.


"그런데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왜 당하는 거야?"

"하루 종일 전화를 걸다 보면 한 명쯤은 걸립니다.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요."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중앙지검 '뚝' 중앙지ㄱ자가 나오는 순간 대부분은 전화를 끊었다. 하루에 수십수백의 전화를 걸다 보면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한 명쯤은 있었다. 준비된 매뉴얼대로 읊었다. 네 지금 김 OO 씨 혹시 이 OO 씨 아시나요?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지금 김 OO 씨 OO은행 통장이 범죄와 연루된 통장으로 수사가 들어갔습니다. 이 OO 씨가 입출금에 이용한 거 같습니다. 정말 이 OO 씨 모르시나요? 피해자는 당황했다. 나는 혹시나 알아차리지 못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는 녹음을 시작할 거고요 녹음 중에는 혹시나 절대 개인정보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단 처음에는 안심시키는 게 중요했다. 개인정보를 말하지 말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의심을 조금 거두었다. 실제 범죄에 이용된 통장이었나 의심하면서 당황하기까지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개인정보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지금 특정 장소로 와줄 수 있나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못 온다고 했다. 혹시나 올 수 있다고 하면 다시 말을 빙빙 돌려 오지 못하도록 했다. 피해자가 이동할 수 없다고 하면 낭패에 빠진 듯한 목소리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피해자보고 근처에 있는 은행으로 가라고 하고 금감원 직원이 출장을 갈 수 있나 알아본다고 했다. 금감원 직원 사칭인 대면책이 나갈 시점이었다. 이 정도면 콜책으로 할 일을 다했고 이 정도까지 오면 90%는 성공이었다. 하루 한 건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매일 전화하는 것도 힘들었다. 목도 아프고, 반복적인 일만 하다 보니 지겨웠다. 중국이라는 낯선 환경에 사무실이자 숙소인 이 곳에 갇혀 전화만 하다 보니 답답했다. 6개월 정도 하니 이 짓도 못하겠다 싶었다. 수중에 2천만 원 정도 생겼으니 한국으로 돌아가 장사나 해야겠다 싶었다.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보고자 여기저기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형사 두 명이 찾아왔다.




그는 6개월 넘는 기간 동안 2천만 원 정도 벌었고 3년 형을 받았다. 대면책은 공무원 사칭 죄가 더해져 더 중죄를 받았다.



돈은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고 연약함은 우리 이성에 빈틈을 만든다. 그 빈틈을 헤집고 들어와 채워서는 안 될 것들이 우리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헤집어진 마음은 다시 우리 생각을 비뚤어 버린다. 나 자신에게 끝없이 관대하고, 다른 이에게는 한없이 차가워진다. 

처음에는 무슨 잘 못을 했는지 모른다. 누가 뭐라 한들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흐르는 물에 손 씻듯 털어 없앨 수 있는 것처럼 가볍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이의 상처가 문신처럼 내 손에 박제될 때, 아무리 씻어도 털어낼 수 없음을 알았을 때, 그제야 헤집어진 마음을 알아챈다. 다시 돌이킬 수 없음을 후회한다. 


*이 글은 보이스피싱범을 두둔하고자 쓴 글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힌다. 가해자에게도 상처가 남고, 피해자에겐 더 큰 상처를 남기는 이 범죄, 연약해진 마음에 혹시나 손대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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