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 포스티노>
시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대체로 먹먹하다. 애통스럽다. 인물들을 달래주는 것은 시가 있던 자리와 기억일 뿐이다. 인물들의 일생도 시의 문장처럼 늘 아름답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비극이 있기에 시인과 인물들의 삶은 시의 본질과 수렴하며 한편의 시로 세상에 남는다.
<일 포스티노>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원작으로 둔다. 소설은 파블로 네루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되었으며, 이탈리아 작은 섬의 눈부신 바닷가 풍경, 그리고 감탄을 자아내는 음악의 조화가 이야기의 감동을 극대화한다. 마리오는 단 한명의 수신인, 네루다의 우편물만을 전달해주는 순박한 청년 배달부이다. 네루다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말라는 우체국장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처음 만난 네루다에게 스스럼없이 대화를 걸고 관심을 표한다. 그가 네루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시인으로서의 존경이 아닌, 네루다가 여성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이유가 먼저였다. 시인이라는 존재, 그리고 시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은 그 다음이었다. 시인이 되고 싶은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메타포의 의미를 알려준다.
‘마리오, 내가 쓴 시 구절은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뿐이야.’네루다가 쓴 시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는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이렇게 답한다. 또한 바다에 대한 시를 읊어주는데, 마리오는 시를 듣고‘말씀하실 때 이상한 느낌이 왔어요.’,‘단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맞아요. 바다처럼요.’그리고 네루다는 바로 그것이 운율이라고 하고,‘마치 배가 단어들 사이에서 통통 튕겨지는 느낌 이었어요’라는 말에 그것이 은유라고 말한다.
네루다가 알려준 메타포는 마리오에게 시를 일으키게 했다. 다시 말해 메타포는 마리오가 자신의 삶을 더욱 실감하도록 했다. 메타포를 깨닫지 못했다면 마리오의 삶은‘아버지의 서글픈 그물’을 닮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마리오는 사랑하는 연인 베아트리체를 마주하며 자신의 감정을 고민하고, 시적으로 드러낸다. 마리오는 네루다가 그의 아내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체에게 바치는데, 도용이라는 네루다의 말에시는 필요한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을 할 정도로 시와 가까워지게 된다. 또한 자신의 고장이 마주한 정치적 상황에까지 적극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의지까지 가지게 된다. 투박하고 순진했던 마리오의 이성과 감성은 시를 읽게 되며 빛을 발한다. 세상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모순 또한 자신이 직면해야 하는 영역임을 통찰해낸 것이다. 마리오는 사회주의자 집회에 참석하여 네루다를 위해 쓴 첫 시를 발표하려 했지만 경찰에 의해 밟혀 죽는다. 네루다가 뒤늦게 섬으로 방문하여 그의 시를 듣게 되긴 했으나, 시인으로서 움직여보기도 전에 희미해진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영화는 네루다의 삶보다는 마리오라는 가상의 인물과의 따뜻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내는 헌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후반부에서는 마리오의 죽음과 네루다의 망명이 비극적인 여운을 남기는데, 네루다의 망명 생활에 대해 좀 더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다른 나라에서 마리오와 추억을 나누었던 아름다운 섬을 추억하는 네루다의 모습에서 망명의 피로감을 느낄 수 있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의 생애
1904년 칠레의 파랄에서 태어난 파블로 네루다는 라틴아메리카의 문호이자 칠레의 국민 시인이다. 그의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이에스 바소알토’이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계기는 그가 시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의지에 있었다. 네루다라는 필명은 곧 그의 법적인 이름이 되었다. 그는 산티아고의 사범대학 불어교육과에 입학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살이 채 되기 전에 첫 시집 <황혼일기>를 펴냈고, 엄청난 반응을 얻어냈다. 두 번째 시집인 <스무 편의 사랑과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네루다를 유명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 스무 살 네루다의 예민하고 아름다운 감성이 묻어있는 이 시집은 연인들의 애독서였고, 특히 여성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고도 한다.
네루다는 칠레의 외교관이자 상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칠레를 떠나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칠레의 외교부는 그를 명예영사로 임명해주었다. 그는 5년 정도 아시아에서 외교관으로 살았고, 미얀마, 스리랑카, 자바, 싱가포르,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지에서 근무했다. 네루다는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절친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던 1936년은 네루다에게 아주 중대한 시기였다. 로르카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파시즘에 대해 분노를 느낀 네루다는 열렬한 공산주의자가 된다. 1946년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이 공산당과의 협약을 어기자, 네루다는 이에 신랄하게 비판한ㄴ다. 1948년 1월 6일 의회에서의 연설은 책으로도 세상에 나오기도 했다. 대법원은 네루다의 상원의원 면책특권을 박탈하고, 국가원수 모독죄로 체포영장을 발급한다.
이후 네루다는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파리,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다. 그의 시는 많은 나라의 언어로 옮겨졌고, 그가 지냈던 거주지는 아름다운 명소로 이름나기도 한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배경이 된 카프리섬 역시 1952년 네루다가 실제로 망명하고 있었던 곳이었는데, 그 때가 되어서야 칠레 정부는 네루다의 체포영장을 철회한다.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여러 번 선정되다가, 마침내 197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2년 후,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 아옌데 대통령이 대통령궁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한 네루다는 앓고 있던 병이 급속도로 악화되게 된다. 네루다가 침대에 누워 쿠데타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때, 네루다의 집을 수색하기 위해 군인들이 침실로 들어왔다. 이때 네루다와 장교와의 대화가 참 인상적이었다. “당신들에게 위험한 것이라고는 이 방에 단 하나밖에 없네.”라고 네루다가 말하자, 장교는 경계하며 총에 손을 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냐고 장교가 묻자, 네루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詩)라네.”
네루다의 장례식은 쿠데타 이후 최초의 군중집회가 되었다고 한다. 2013년에는 그가 독살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 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조사 결과, 네루다는 암으로 사망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는 칠레의 민주주의를 위해 온 몸을 바쳤고, 그의 시와 목소리는 칠레 국민들로 하여금 군부 독재를 타파하도록 했다. 네루다의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그는 시로 혁명했고, 혁명을 담은 시를 썼다. 자연에 대한 사랑, 민중에 대한 사랑을 시로 썼으며, 시에 대한 사랑 또한 시로 썼다. 시와 민중을 위한 삶을 살았던 네루다는 칠레와 남미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시적 영감과 혁명의 의지를 남긴 대시인이다.
메타포와 인간
<일 포스티노>에서 순진했던 청년 마리오는 네루다를 통해 메타포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특히 마리오는 사랑을 하며 메타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해한다. 마리오를 사랑하게 된 베아트리체는 고모 로사가 마리오와의 일을 묻자 이렇게 말한다. ‘이야길 했어요. 내 머리는 나비의 날개짓 같다고 했어요. 당신의 미소는 장미요, 새싹이요, 솟아오르는 물줄기입니다. 그대 미소는 부서지는 은빛 파도이며…’. 마리오의 고백에 황홀한 표정을 지은 베아트리체는 마리오와, 그리고 마리오의 메타포와 정열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바다에 관한 메타포 이야기를 듣는 장면, 그리고 베아트리체에게 선사한 고백의 메타포의 장면은 잔잔하고 묵직한 감동을 안김과 동시에, 메타포가 지닌 힘을 이해하게 한다. 시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더라도, 시에 관심이 크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영화는 메타포를 굉장히 직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기에 메타포의 매력과 위대함에 우리는 금세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메타포는‘의미를 바꾸다’를 뜻하는 그리스어인 메타포라 (Metaphora)에서 비롯된 개념어다. 은유를 뜻하는 단어이지만, 비유를 포함하기도 하며 번역 없이 메타포라는 단어 그 자체로 사용되기도 한다. 메타포는 ‘자리를 바꾸어 넣음’의 맥락을 지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물에다 다른 것에 속하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옮겨 넣는 일’은 유추를 토대로 보편에서 특수, 특수에서 보편, 또는 특수에서 특수로 전환하면서 생긴다고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장식, 선명감, 의미의 명확성을 목표로 둔다. 비유는 수사학적 관점과 시적 관점에서 다르게 다뤄질 수 있는데, 수사학적 관점에서는 비유를 지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본다. 명백한 유사성을 근거로 하여 한 낱말을 다른 낱말로 대치하는 것이 비유라는 것이다. 반면 시적인 측면에서의 비유는 낱말들 혹은 문장들의 대치가 남기는 배경과 여운, 긴장감에 더 몰입하는 개념으로 다뤄진다. 다시 말해, 문맥에서 발생하는 미미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불러일으키는 상호 관계가 시적 비유인 것이다. 두 개 혹은 세 개의 문맥에서 발생하는 상호 관계는 문장의 무게 뿐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힘까지 불러일으킨다.
메타포의 힘은 서로 다른 것 혹은 이질적인 범주의 조화에서 오기 때문에,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메타포의 단위들이 존재한다. 메타포는 세상의 관습과 정반대의 영역에 있기에 낯선 경험과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메타포는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쉰다. 우리가 그것을 잡아채지 못하고 있을 테다. 메타포를 찾는 여정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세상을 견디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를 남기지 않는 무자비한 과정이다. 메타포는 외로운 현대인에게 세상을 살아갈 재미와 근거가 되어주는, 혹은 착각이라도 하게 해주는 찬란한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있는 현실은 시적인 것과는 등을 돌린 채 무자비하게 흐르고 있음을 항상 느끼지만 이미 현실의 많은 일들, 이를테면 가치를 남기거나 변화를 일으키는 일들은 메타포라는 개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인간은 극적인 아름다움을 원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존재이기에, 메타포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본능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시를 쓰지 않아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