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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Dec 30. 2020

가면을 뚫고 나오는 인간의 욕망과 모순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을 보고

NETFLIX <종이의 집>



2017년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많은 애정을 받아온 스페인의 범죄 스릴러 드라마 <종이의 집> 한국판 리메이크 제작이 확장되었다. 한국판 <종이의 집>의 가상 캐스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등 드라마 팬들의 큰 기대를 자아냈다. 해외의 인기 드라마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경우는 최초는 아니다. 2019년, tvN은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미국의 드라마 <지정생존자>를 한국 버전 <60일, 지정생존자>로 재탄생하여 내보이기도 했다. 원작에 비해 밋밋하다는 점, 정치적 편향성, 허술한 전개가 전체적으로 아쉬웠긴 했으나, 원작과 비교하여 감상하는 재미와 오마주스러운 연출이 참신하다는 평가를 얻었던 드라마이다. 해외 작품을 잘 현지화시킨 드라마라는 긍정적인 평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세계관으로 패치가 된 <종이의 집>은 <지정생존자>를 뛰어 넘을 수 있을지, 혹은 원작보다 못하다는 아쉬움을 남길지 과연 기대가 된다.



<종이의 집>은 2020년 12월 현재 시즌 4까지 업로드 되어 있으며, 시즌 5가 이어 올라온다. 붉은 후드,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의 가면을 쓴 8명의 강도들이 교수라고 불리는 머리가 비범한 남자와 함께 스페인 조폐국과 중앙은행의 금을 털기 위해 범죄행각을 하는 이야기이다. 저마다 각기 사연을 가지고 교수와 함께하게 된 인물들은 도쿄, 베를린, 리우 등 국가의 도시를 가명으로 사용한다. 인물들의 입체적인 캐릭터와 관계가 사건의 진행과 몰입도를 훌륭하게 높여내고 있다는 점은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주요한 요소이다. 무엇보다 <종이의 집>만이 가진 독창적인 점은 이들의 범죄 수법에 있다. 범죄를 기획하고 컨트롤하는 인물인 교수는 조폐국과 은행 바깥에 있고, 나머지 인물들은 조폐국과 은행 안에서 경찰과 대립하며 교수의 지시대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조폐국 바깥과 내부라는 경계가 갈등과 위기를 형성하는 독창적인 요인이 되어준다.      




강도의 목적과 특징     


교수는 스폐인 조폐국에서 24억 유로를 털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그의 작전에 동참하게 된 인물들을 외딴 저택에서 훈련시키고, 완벽한 진행을 위해 나름의 규칙들을 걸기도 한다. 강박적으로 치밀하게 범죄의 모든 것을 기획하고 만일의 하나까지 대비하는 교수의 면모 덕분에, 이들의 범죄는 탄탄하고 순조롭게 진행된다. 교수가 기획한 조폐국의 강도는 단순히 조폐국 안에 있는 화폐를 훔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내부에 침입하여 조폐국 안에 있는 기계로 화폐를 찍어내어 나온다는 것이다. 24억 유로를 찍고, 경찰과의 대립을 피해 조폐국을 무사히 나오기 위해 8인의 인물들에게는 인질 관리, 화폐 생산 등 각자의 역할이 주어지기도 한다. 8인의 범죄자들은 조폐국의 단단한 문을 걸어 잠그고, 필요할 때마다 문을 열어 경찰과 대립하고 협상하기도 한다. 강도짓을 위해 들어간 조폐국이지만, 이들은 마치 조폐국 안에 ‘갇힌’ 듯 심리적인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처럼 조폐국은 야망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그들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공간으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교수는 24억 유로를 찍어 경찰을 따돌리고 나온다는 굵은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조폐국 내부의 범죄자들이 만들어내는 변수들을 통제 및 지원하고, 경찰과 심리전을 벌이며 계획이 틀어지지 않도록 온갖 힘을 쓴다. 경찰의 레이더 밖에서 경찰과 조페국의 일들을 모두 감시하고, 변수에 대처하는 교수는 매우 전지적이고 전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교수의 나약함과 허술함, 욕망 등이 묘사되며, 경찰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게 되기도 한다. 비밀스럽고 완벽한 교수가 경찰 라켈에 의해 쫓기는 구도는 조폐국 내부와는 다른 긴장감을 형성하고, 작고 커다란 사건들을 발생시켜낸다. 조폐국 내부와 외부라는 명확한 경계가 존재했기에,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융합되기도 하며, 많은 분량과 독특한 긴장감을 남겨낼 수 있었다.      



뚜렷한 캐릭터와 관계     


<종이의 집>에는 적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과거사를 지닌 8명의 인물들이 우선 시즌 1에서 등장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여러 인질들이 등장하며 사건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강도를 쫓는 경찰 측에도 다양한 목표를 가진 인물들이 있다. 많은 숫자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음에도, 그들을 쫓아가기가 버겁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질들은 무사히 빠져나가기를 원하고, 경찰은 각기의 정치적, 양심적 신념을 따르며 범죄를 소탕하거나 적당히 덮어내려고 한다. 또한 범죄자 집단 내부에서도 신념과 양심에 따라 서로를 배척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동료가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경우 총을 겨누는 일을 서슴지 않고, 집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차지하려는 등 권력욕을 보이기도 한다. 시즌 초반에는 조폐국에서 돈을 찍어내는 동안 무사히 버틴다는 공통의 목적을 위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중반부터는 공통의 목적보다는 개인의 목적과 편 가르기에 염두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종이의 집>은 범죄 스릴러 장르를 가지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로맨스적인 요소들을 풍부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10살의 나이차를 가진 리우와 도쿄는 범죄를 일으키는 와중에서도 뜨거운 연애를 한다. 이기적이기도 한 이들의 연애는 위치를 들키고 추적당하는 등 집단에게 민폐가 되기도 한다. 중심 인물인 도쿄는 리우와의 로맨스를 통해 내면적으로 각성하고 성장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조폐국의 비서였다가 인질로 잡힌 모니카는 극한의 상황에서 누군가를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리고, 덴버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인질의 위치에서 범죄자의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교수와 심리전을 벌였던 경찰 라켈은 교수와 사랑에 빠져 경찰의 위치에서 범죄자의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이처럼 <종이의 집>은 지능적인 범죄와 액션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로맨스를 비롯한 휴머니즘적인 이야기를 깊이 반영한다. 범죄 진행에 인물들의 로맨스가 결정적인 역할로 작용하며, 묘한 여운과 몰입감을 자아낸다.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이는 멤버들에게 교수가 가장 최우선적으로 강조했던 원칙이다. 이 원칙 아래에서, 범죄자들은 스스로를 ‘선’한 존재라고 합리화한다. 인질이나 경찰에게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그럴 듯한 말들로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 범죄자들은 거리에 고액의 현금을 뿌리며 시민들의 ‘반란군’, 더 나아가 ‘영웅’으로 보이기를 원하기까지 한다. 멤버들은 시간이 갈수록 지쳐가고, 점차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분노에 못 이겨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신념과 어긋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새로운 이상향으로 가겠다는 목적으로 ‘의도가 좋고’, ‘선한 영향력’이 있는 범죄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들은 스스로가 직면한 악과 모순에 맞서거나 굴복하며 점점 복잡한 괴물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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