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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May 03. 2021

그러라 그래

불행한 완벽주의 벗어던지기


양희은, <그러라 그래>


시니컬한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예상되는 결의 에세이였지만 양희은 가수 특유의 쿨한 문장의 진한 여운이 좋았다. "배낭 하나만큼만 짐을 쌀 줄 아는 마음" , "낯선 곳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늘 낯선 곳에 있는 듯 자유로운 마음"... 마음에 대해 이처럼 적확하고 여유롭게 표현해내다니.


*


거의 4-5개월 내내 심각한 무기력증을 겪고 있다. 일기를 써보며 해소해보려 해도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의 지금 시기는 분명히 소란스럽고 정신없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 여유롭고 한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졸업 작품 준비를 한다는 핑계, 자격증 딴다는 핑계, 무릎 아프다는 핑계, 코로나라는 핑계 등으로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무력하다.



 나의 생활이 이렇게 가라앉게 된 이유는 '불행한 완벽주의', 이것 하나밖에 없다. 일단 해보면 될 것을, 앉은 자리에서 머릿속으로 괜한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려보고서는 오만하게 포기하거나 무시해버린다.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과 평가가 나올까 봐 미꾸라지처럼 회피하며 생활했다. 그 동안 나의 4개월은 누워 있고, 영상 보고, 게임 하고, 잠깐 공부하고, 잠깐 과제하고.. 그게 전부였다.  


계속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혹은 회피했다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친구 한 명을 만났는데, 그 친구는 이미 졸업을 하고 스타트업 회사의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었다. 실무에서 활용되는 데이터 분석 트렌드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가 어쩜 그렇게 어른스럽게 느껴졌고, 나와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여졌는지 모른다. 비슷한 출발선에 있던 친구였는데. 그 날 뮤지컬을 보며 생각없이 놀기 위해 만났지만, 나는 내내 위축되어 있었고 친구는 살짝 지루해보였다.친구를 지루하게 만든 내 자신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다.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생각보다 더 불행한 완벽주의자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요즘 가장 고민인 것이 '인생의 그럴듯한 마스터 플랜' 을 짜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젊은 나이인 지금 말고도, 3040대 쯤엔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가장 괴롭다고 말했다. 나의 관심사가 공무원도 공기업도 사업에 가 있지 않기 때문에, 더군다나 수요가 그다지 좋은 직업에 관심이 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불안감과 조급함이 크다고 말했다.


친구는 답답하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누구나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말을 해주었다. 본인도, 다른 지인들도 완벽한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는다고 내내 강조했다. 대략의 그림만을 이어 그려나가는 데에 몰두할 뿐이라고.


워낙 꼼꼼하고 똘똘한 친구이기에, 나는 그 친구가 세세한 커리어 골쯤은 구체적으로 생각해놨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똑바른 그녀도 나와 같은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조금의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앞날에 대한 막연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구나. 그런데 나는 지나치게 성급함을 부리고 있었구나. 그러한 생각에 머릿속이 정돈됨과 동시에 수치스럽기도 했다.  내가 그 동안 나를 심하게 방치해두고 있었다는 것을, 먼지가 많이 쌓였다는 것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친구는 그 동안 데이터 관련 공부,, 게임 플랫폼,,, 지식산업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보고 다양한 다짐을 하면서 지냈는데, 나는 그 동안 어떤 경험도 다짐도 하면서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평과 체념, 작은 희망만 가졌을 뿐.



친구는 헤어지면서 계속 말해주었다. 망설이지 말고, 잘 안되어도 좋으니까 일단 해보라고. 완벽주의를 극복하는 해법은 시뮬레이션을 '작작 돌리는' 것이라고.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해진 건 있다. 잘 살고자 하는 미련을 '더' 버리고, '더' 덜어내고 싶어졌다는 것.


나를 완벽하게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완벽함'이란 허울좋은 허상일 뿐이라는 것.


나의 생각들을 어떻게 뿌려내고, 나의 출발선을 어디에 그을까부터 고민해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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