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업』, 도러시아 브랜디
“가장 편협한 사람은 소신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작가라는 단어는 참 모호한 느낌이 있다. 소설가와 시인과는 달리 커다랗고 열려있다. 화가라는 말도 그렇다. 작가, 화가. 두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좋다. 소설가, 디자이너 등 다른 이름으로 세분화해야 하는 지점은 물론 있지만, 그저 “화가, 작가”의 굵은 어감으로 자신의 직업과 정체성을 소개하는 것이 좋다. 모나지 않고 원시적인 느낌이 나서 좋다.
활자와 이야기로 뒤덮여지고 있는 시대다. 미디어가 다채로워지면서 작가라는 직업인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고, (신춘문예의 변화추세만 하더라도..)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작가가 되어보라고 격려 및 자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 작가의 존재감에 대해 계속 고민한다. 졸업 전 진로 상담을 할 때,문학을 계속하고 싶다,는 학우에게 교수님들은 글은 취미로 남겨두라며 말리셨다. 나도 가끔은 전업 작가가 되어서 글만 쓰며 살고 싶다는 충동이 새어나올 때가 있지만, 비현실적인 판타지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작가에 대한 꿈을 망설이게 한다. (창작 과제할 때, 솔직히 100% 몰입하지 못했던 것도 있다. 한 80% 정도? 내 창작에 몰입한 것 같다. 100%를 쏟아내면 글쓰는 일을 멈추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스터디를 꾸리고, 주변인들처럼 습작을 매일같이 해서 시인이나 소설가로 데뷔하겠다는 당장의 계획은 없다. 그러나 글을 쓰는 직업인이 되고 싶다는 취업 목표와, 작가로 늙어가고 싶다는 꿈은 있다. 그래. 글을 쓰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것 같다. 글쓰기는 떨어뜨리려 해도 떼어내지 않는 내 삶의 그림자와 같고, 눈 대신 흘리는 손가락의 눈물과도 같다. 주위 친구들이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 그러면서도 나도 도전해볼까, 하는 의지가 새싹처럼 피어오르기도 한다. 음, 모르겠다. 나는 일단 신춘문예라는 언덕보다는 내 언덕을 오르는게 우선인 것 같다.
아무튼 적고 작게나마 글쓰는 일은 즐겁고, 어떤 형태로든 나는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