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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Feb 05. 2023

도서관 키드의 추억

첫 도서관은 외할머니의 집이었다. 


나는 채송화가 예쁘게 피어 있던 작은 집에서 할머니와 삼촌, 그리고 늙은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지냈다.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었을 젊은 삼촌의 방에는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했다. 

먼지 묵은 낡은 전선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부품들이 이곳 저곳 놓여있었다. 나는 외출한 삼촌 방에 들어가, 그것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놀았다.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삼촌 방의 나무 책장이었다. 만질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났던 낡은 책장. 

나는 삼촌의 책상 위에 발 딛고 올라가 책장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얼리어 답터 X세대였던 삼촌은 ‘PC사랑’과 같은 90-00년대 컴퓨터 잡지들을 굉장히 많이 모아 두었었다. 

잡지들이 워낙 두껍고 무거웠던 탓에 일일이 꺼내 보지는 않았다. 


‘윈도우즈 2000에 도전하기!’ 와 같은 투박한 제목들의 의미를 애써 이해하려 하진 않았다. 

나는 아마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있었을, 세월의 영향으로 더 이상 단단하지 않고 촉촉해지고 있었던 나무 책장을 만져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낡은 책장을 소란하게 채우고 있던 잡지들의 글자들을 훑어보는 일을 즐겼다. 


오후마다 하늘에서 울려 퍼졌던 공군사관학교의 훈련 소리. 할머니 냄새가 나던 따뜻한 햇살. 

작은 나는 그런 감각을 느끼며 말을 틔웠고, 키를 키웠다. 

나의 가장 낮은 눈높이로 바라보았던 그 집은 허물어지고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를 맴돈다. 

뒤돌아보면 어디선가 나타날 것처럼.


채송화가 낮게 피었던 집은, 나를 허물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가장 뭉툭한 기억이고,

나를 가장 크게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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