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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수 Dec 01. 2019

내 자리 1

'행복'한 순간 _ 20191014

 지난밤 많이 뒤척이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사소한 할 일에 대한 불안이었는지, 불안이 앞서서 사소한 일도 고민스럽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통 모르겠다. 한동안 내가 그린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새 빠져나와 어디로 갈지 갈팡질팡한다. 다시 책을 읽고 처음 보는 세계와 마주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안내자이다. 이 모든 고민은 결국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껴야만 멈출까.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행복은 체험하는 동안에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오직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고 되돌아볼 때에만 우리는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선, 행복이란 걸 이렇게 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 순간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그때 행복했지’라고 떠올릴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떠올린 순간은 분명히 '그날의 행복’이었다. 최대한 글로 설명하자면 그것은 따뜻함, 풍요로움, 해방감 등 온갖 좋은 것들이 내 안에서 완성된 느낌,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 ‘행복’이었다. 나는 그것을 꽤 오래 맛보았다.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그것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내 '열정'이 내 '감사'가 줄어들면서 나는 살짝 오만해져 있었다.


 다시 벌판에 서있다. 바람이 불어 나무들도 쓰러져버린 벌판…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극복할 수 있다고, 살면서 이미 여러 번 깨우쳤다. 그러나 엄마가 저녁밥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걸 알면서도 부르러 오기 전까지 놀이터를 떠나지 못하는 아이처럼 나는 알면서도 움직일 수 없다. 그 벌판에도 금세 꽃이 피지 않을까. 그 벌판도 꽤 쓸모가 있지 않을까.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서있다.


@seat1_mini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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