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희수 Dec 03. 2019

내 자리 2

혼자 가는 길 _ 20191015

요즘은 동네에 들은 만한 강좌가 없나 자주 기웃거린다. 일할 때는 관심이 없었는데 시간이 많아지니 다양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민센터나 도서관에서 하는 강좌들도 괜찮은 것들이 꽤 많다. 항상 신청기간을 놓쳤었는데 이번에는 날짜를 잘 기억해뒀다가 신청에 성공했다.


강좌 첫날 도착해보니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보니 친구이거나 전에 다른 강좌에서 이미 친분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의자에 살짝 걸터앉아 수업 시작을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스마트폰의 편리함 중 하나가 시선처리 기능이지 않은가. 그래도 괜히 마음속에 소외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seat2_minisu


어제는 새로운 강사 모집 연수가 있어서 참여했다. 일찍 도착해서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있는데 시간이 가까워오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찾으려고 우왕좌왕한다. 역시나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는 사이인 것 같다. 여기저기서 아는 체하느라고 어수선하다. 그 무리에 속하지 못해서 섭섭하진 않았지만 조금 뻘쭘한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다. 그때 친구들과 5명이서 똘똘 뭉쳐 다녔다. 반 번호대로 숙소의 방이 지정되었고, 친한 애들끼리 같은 방이 되지 않으면 방을 바꾸기도 했다. 갑자기 친하지 않은 반 아이가 우리와 방을 함께 쓰고 싶다고 방전화로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조용해서 있는 듯 없는 듯 한 아이였다. 사실 그 이후의 기억은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함께 놀았는지 거절했는지 선명하지 않다. 그때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우리가 세상의 전부인양 함께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느라 바빴다. 

그 친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왜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녔을까...  

엄청나게 오래되어 소설처럼 각색되어버린 기억이 떠오른 건 나이 탓인가 보다. 


그때는 쉽고 자연스러운 일들도 이제는 용기가 필요하다. 힘을 너무 줘도 힘을 너무 빼도 안된다. 평범하게 섞여있기를 바라지만 아무 걸림 없이 섞이기는 늘 어렵다. 때로는 누구를 만나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만남이 꺼려지기도 한다. 상처 받기가 지레 두려워 눈을 내리깔아 버리거나 기껏 써놓은 장문의 위로글을 삭제하고 단톡 방에나 어울리는 인사치레로 끝낸다.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서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곁을 내주지 않으면서도 비어있는 자리는 쓸쓸해 보여 온갖 좋은 것으로 치장해보지만 오히려 더 처량하다.  


기대치를 조금 낮추면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채워지는 것이 있다. 말없이 조용히 있더라도 함께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 내일은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지. 비판이 목적이 아닌 하루치 온기라도 전달하고 와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