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까운 길, 도보 여행의 맛

백일백장 여든셋

by 민희수

우리 부부는 등산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그러니까 굳이 경사로를 찾아 올라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 자연이 좋아지고, 사람들이 등산이 건강에도 좋다니까 우리도 덩달아 "언젠가 가볼까?"라는 말만 해보곤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그 장대한 풍경은 늘 감탄스럽지만 정작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창밖의 날씨가 너무 좋다 하니, 남편이 집 근처에서 출발하는 누리길이 있다고 가보자고 한다.


급히 편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고 물 한 병들고 고양누리길 2코스(6.7km)로 나섰다. 출발부터 언덕이다. 우리에게는 꽤 가파른 나무계단이 이어졌다. 대화하다가 숨이 차서 결국 남편 발뒤꿈치만 바라보며 묵묵히 따라갔다. 다행히 어느 정도 올라서자 경사가 완만해졌다. 그제야 비로소 풍경도 보고 다시 이야기도 나누며 걸을 수 있었다.


길가엔 밤송이가 굴러다니고 며칠 전 비 덕에 촉촉하고 폭신폭신한 흙길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나무뿌리와 돌멩이를 디딜 때마다 조심스럽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 마치 멀리 여행이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거의 5km쯤 걸었을까. 드디어 북한산이 위엄을 드러냈다. 늘 멀리서만 보던 풍경인데 가까이서 바라보니 또 다르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목적은 ‘정상 정복’이 아니라 ‘맛있는 점심’. 결국 북한산은 멀리서 감탄하는 걸로 만족하고 발걸음을 식당으로 돌렸다.



막국수집에 도착해 불고기와 시원한 막구수를 함께 먹으니 방금 걸은 만 보의 노고가 입 안 가득 보상으로 다가왔다. 한입 한입이 꿀맛이었다. 배부르게 먹고는 근처 흥국사까지 들렀다. 가을은 절집 풍경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하니까. 단정히 꾸며진 마당에서 잠시 쉬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를 타고 편하게 귀가했다.




멀리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집 가까운 곳에서 만난 작은 여행도 그에 못지않은 매력이 있구나. 내일은 또 어디로 떠나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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