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여든여덟
세례 때 샀던 첫 미사보도, 친구가 선물해 준 미사보도 불편해서 잘 쓰지 않았다. 봉사를 할 때만 어쩔 수 없이 사용했는데 너무 가벼워서 자꾸 흘러내려 늘 신경이 쓰였다. 여러 군데 성물방에서 찾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장식이 있으면 무게는 있어서 흘러내리지는 않지만 너무 화려한 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온라인에서 예쁜 미사보를 파는 곳을 발견했다. 오래 고민하다가 결정을 못해서 결국 남편에게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달라고 해서 겨우 주문했다. 수작업이라 일주일을 기다린 끝에 받아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다음날 봉사 때 써보니 훨씬 안정적이라 손이 덜 갔다. 진작에 살걸 싶었지만 그 과정도 다 이유가 있었으리라.
새 미사보를 머리에 얹어서인지 봉사할 때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자꾸 흘러내리는 미사보를 매만지던 불편함 대신 말씀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봉사하는 순간이 한결 단정해졌다. 작은 성물 하나가 내 태도와 마음까지 다잡아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번 소비는 물건을 넘어서 마음까지 채워주니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