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여든일곱
하와이 여행 중에 마음에 쏙 들어온 모자가 있다. 와이키키 근처 쇼핑몰에서 남편은 감기약에 취해 쉬는 동안 심심해서 들어간 편집숍에서 운명처럼 만났다. 너무 거창한 표현일까.
내 취향인 페이즐리 무늬, 가볍고 시원한 재질, 뒷짱구인 내 머리에도 꼭 맞는 핏. 자주 쓰는 볼캡보다 어려 보이지도 않고 세일도 안 했지만 집에 돌아가도 생각날 것 같아 결국 사버렸다. 그 뒤로 매일같이 쓰고 다니는데 햇볕도 잘 막아주고 머리도 시원하다.
그런데 오늘 점심, 리코랑 가을바람 맞으러 나가려는데 모자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잘 둔다고 뒀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야, 그렇게 마음에 든다더니 아끼는 물건 맞아?’ 하고 스스로 투덜거리며 드레스룸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래도 없어서 포기하고 거실에 올라오니 산책 가방 위에 찌그러져 있다. 처음에나 구겨질까 신경 썼지 일주일만 지나도 벌써 헌물건이다.
모자를 쓰고 산책을 나선다. 쫄랑쫄랑 귀엽게 걷는 작고 소중한 리코가 보인다. 애지중지 예쁜 우리 강아지.
소중한 물건은 없다. 필요한 물건만 있을 뿐. 아끼느라 너무 잘 두지 말고, 제때 잘 쓰이도록 제자리에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