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는 분위기 메이커

백일백장 아흔둘

by 민희수

추석이지만 양가 모두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음식 준비는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 집도, 시댁도 이제 아버님만 계신다. 시아버님은 말수가 적으시고 몸도 편찮으셔서 전화를 드려도 잘 받지 않으신다. 무뚝뚝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하게 하시지도 않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추석이라고 친정 식구들과는 미리 저녁 식사 예약을 해두었지만, 시아버님께서는 연락이 닿지 않아 식사 약속을 잡기도 애매했다. 그래도 집에 계실 테니 간단히 드실 음식을 챙겨 가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친구가 알려준 ‘게으른 주부의 명절 팁’이 생각났다. 시판 동그랑땡에 계란물을 입혀 굽기만 해도 집에서 한 것처럼 맛있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며 해봤는데 생각보다 그럴듯하다. 불고기, 찰밥, 그 동그랑땡을 곱게 담아 과일과 용돈을 챙겨 출발했다.


도착해 보니 아가씨네가 이미 와 있었다. 아버님생신 때나 보는데 명절 때 보니 반갑기도 했다. 아가씨도 이제 시댁에 잘 내려가지 않으신다고 한다.

리코는 현관에서부터 바쁘다. 아버님댁 구석구석을 탐색하느라 꼬리가 쉴 틈이 없다. 조카들은 “리코야, 여기 봐!” 하며 연신 사진을 찍는데 가만히 있어주질 않는다. 간식 없이는 포즈도 없다.

이내 조카들의 웃음이 퍼지고 시아버님 얼굴에도 오랜만에 미소가 번진다. 리코가 장난스럽게 아버님 발치에 앉아 꼬리를 흔들자 아버님도 웃으시며 머리를 쓰다듬으신다.

리코 덕분에 웃게 되니 조용하던 집이 오랜만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애교쟁이 분위기 메이커 사랑둥이 리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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