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아흔여덟
오늘은 우리 성당의 ‘본당의 날’ 행사였다. 쉽게 말하자면 생일 같은 날, 올해로 11주년이다. 원래는 안내 봉사를 맡기로 했는데 다른 단체에서 해준다고 해서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임신부님께서는 “본당의 날이니까 꼭 오세요. 제가 사비로 출장뷔페도 불렀습니다”라며 여러 번 참석할 것을 당부하셨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꼭 이럴 때 습관적으로 생기는 귀찮고 주저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또다시 나를 가로막았다. 성당 분들이 남편과 함께 오라고 하셔서 남편에게 물었더니 “원하는 대로”라고 한다. 그렇게 잠시 망설이다가 문득 ‘또 이러고 있구나. 당연히 가야 하는 자리에도 번거롭다는 이유로 뒷걸음치며 머뭇거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남편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
조금 늦었지만 미사에 참례하고, 장기자랑을 구경하고 게임도 함께 했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활기찼다. 그리고 대망의 출장뷔페. 며칠째 내리던 비가 오늘은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신부님이 간절히 기도하신 덕분인 듯싶다.
성당마당에 봉사자분들이 미리 테이블을 세팅해 두셨고, 구역별로 질서 있게 음식을 담다 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식사할 수 있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를 가득 채운 따뜻한 에너지가 내 마음 깊숙이 전해졌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시간, 모두가 선하고 다정한 얼굴이었다.
몸이 약간 으슬으슬해서 오후 행사는 핑계 대고 빠져나왔지만, 돌아오는 길이 한없이 따뜻했다.
예전 같으면 ‘왜 나는 늘 발을 빼려 할까’ 하고 자책했을 텐데, 오늘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나 자신을 조금은 칭찬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