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쌀쌀하다. 바람이 매섭다.
퇴근길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서둘러 집에 가는 것만 생각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잰걸음한다.
요즘 마음에 여유가 없다. 그래서 걸을 때도 여유가 없다. 무뚝뚝하고 급하다.
며칠 전, 문득 발걸음을 늦췄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천천히 걸었다. 내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달과 별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이렇게 맑았던가. 나뭇가지의 뾰족한 생김새도 보였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엄마 손을 잡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아이도 보였다.
글을 쓸 때는 내 마음 상태가 그대로 문장에 옮겨진다.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다. 서둘러 목적지에 가고 싶은 마음처럼, 빨리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손가락의 리듬이 빨라진다.
들뜬 채로 쓴 글을 나중에 읽어보면 대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쓰다니.'라고 감탄할 때도 있지만(!) 열에 아홉은 이상함을 느낀다. 퇴고에 시간이 잔뜩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며 스스로 내 어깨를 두드린다.
그럼에도 초고는 최대한 빨리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책의 원고든, 브런치에 발행할 글이든 똑같다. 글쓰기에 몰입한 순간에 끝을 봐야 글이 흐지부지되지 않고 전체 흐름도 유지된다. 글을 쓰다 말고 나머지는 내일 써야지 하고 미루면 십중팔구 내일이 모레, 글피가 된다.
글을 빨리 쓰는 게 중요하지만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 쫓기듯 글을 쓰다 보면 글의 양은 넉넉해지지만 걷어내야 할 군더더기도 그만큼 많아진다.
글을 쓰는 손은 빠르고 기민하게
글을 쓰는 마음은 느리고 차분하게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건 어렵다. 글쓰기에 탄력이 붙어 손을 바삐 움직이다 보면 마음도 덩달아 급해진다. 육체와 정신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잠시 손을 멈춘 뒤 심호흡을 해보자. 글쓰기에 몰입한 나를 칭찬하면서도 글을 빨리 쓰는 데에만 몰두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자.
길을 걷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듯이 리듬을 늦추면 어떨까. 내 글이 목적지를 향해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되돌아보자. 글 쓰는 중간중간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초고를 빠르게 쓰면서도 퇴고에 드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빠르게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아무 글이나 빠르게 쓰는 것
아무 글도 안 쓰는 것
둘 중에 뭐가 나은지는 자명하다. 아무것도 안 쓰는 것보다 뭐든 쓰는 게 낫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며 글 쓰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도 아무 글이나 두서없이 쓰는 게 좋다. 그러다 '글 쓰는 행위'에 충분히 익숙해졌다면, 글의 주제와 방향성을 생각하며 빠르지만 천천히 쓰는 것을 권하고 싶다.
손은 번개처럼 재빠르게
마음은 호수처럼 잔잔하게
글을 써보자.
목적지에 빨리 닿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글을 쓸 때도 속도와 여유를 함께 생각하며, 민첩하면서도 느긋하게 글을 쓰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