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친해진 날을 추억하며

by 조형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라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블로그에서 책 소개를 받고 바로 구입했습니다.


《코스모스》는 무려 7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입니다. (이렇게 두꺼울 줄 몰랐네요^^) 야심 차게 책을 구입했건만 보통 책 세 권을 합쳐놓은 크기에 압도당해 한 달 넘게 책상 위에 올려만 두었습니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도대체 왜 산 거야’하고 책이 심드렁하게 생각했을 것 같네요. 언제까지나 책상과 붙어있게 만들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무거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로 했습니다. 막상 책을 읽으니 탄력이 붙습니다. 이제 3분의 1 정도 읽었네요.


《코스모스》는 광활한 우주의 시작, 우주의 질서와 조화,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우주의 규칙을 추측하고 발견한 과학자들의 삶도 조명합니다.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는 저는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먼지보다 작은 존재입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넓어지는 우주 이야기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지고 두 손이 모아집니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과학자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스모스를 읽고 있자니 대학 새내기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평범한(?) 1학년이었습니다. 게임하고 공부하느라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프로게이머로 복귀하려고 했지만 건강이 나빠져 대학을 1년 동안 다녀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대학 생활은 자유가 별처럼 쏟아지는 시기였습니다. 아무도 제게 뭔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놀고 싶으면 놀고 술 마시고 싶으면 술 마셨습니다. 모든 게 제 마음이었습니다. 선배들과 친구들을 쫓아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에 간 순간을 기억합니다. 도서관이 어떤 공간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들어간 도서관은 수많은 책으로 이루어진 우주였습니다. 제 키보다 한참 큰 책장에 줄지어 꽂혀 있는 책들은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공기도 달랐습니다. 종이 특유의 냄새가 스며들어 밀도 높은 공기의 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책장 사이사이를 거닐며 가만히 책을 고르는 게 취미가 되었습니다. 학부생이 한 번에 최대한 빌릴 수 있는 10권의 책을 가방에 넣어 귀가하고 반납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온종일 읽을 수 있는 것은 대학생의 특권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저는 과학 역사책을 좋아했습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이라고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행성이 타원 궤도로 움직인다는 것을 밝혀낸 요하네스 케플러,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우주의 운동 법칙을 꿰뚫은 뉴턴, 시공간이 얽혀있다는 걸 단지 머릿속으로 증명한 아인슈타인 등. 물리학자들의 업적과 생애를 들여다보는 게 좋았습니다.


천재들의 재능과 집념을 보며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동경했습니다. 공학 대신 물리학을 전공하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종종 했습니다. 과학 역사책으로 입문한 독서는 문어발처럼 다양한 분야로 이어졌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책만 들입다 읽었던 그때가 가끔 그립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던 무한한 자유도 그립습니다.




《코스모스》를 읽으며 스무 살에 과학책에 빠졌던 제가 생각나서 좋습니다. 익숙한 음악을 들으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듯, 익숙한 과학자의 업적을 보면서 대학 시절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회사 일과 가정의 대소사로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기가 어렵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짜내서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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