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와 청소의 평행이론

by 조형근

어제는 일요일이었습니다. 제게 일요일은 집을 청소하는 날입니다. 더 누워있고 싶지만 아내의 눈치를 보며 청소기를 듭니다. (^^) 집안 곳곳을 활보하며 청소기를 움직입니다.


안방, 서재, 거실, 부엌, 베란다, 딸의 방을 오갑니다. 청소하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괜히 방바닥 구석 머리카락 한 올이 눈에 밟힙니다. 또 청소기를 밉니다.


이상합니다. 어디선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 퇴고입니다. '청소하는 건 퇴고랑 닮았구나.'

청소하면서 퇴고를 생각하다니, 정신이 이상해졌나 봐요. 어쨌든(!) 청소와 퇴고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1. 끝이 없다.


거실을 청소한 뒤 안방에 갔다가 다시 거실에 오면 또 먼지가 보입니다. ‘분명 여기 청소한 곳인데’ 다시 손을 앞뒤로 움직입니다. 청소를 끝내고 편한 마음으로 소파에 푹 앉습니다.


티끌만 한 먼지가 또 보입니다. 열심히 청소기를 밀었건만 먼지를 다 없앨 수가 없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청소하는 순간에도 먼지는 들어오고 정수리에서는 머리카락이 떨어집니다.


퇴고는 끝이 없습니다. 오늘은 완벽하다고 생각한 글도 내일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얼마나 퇴고해야 할지는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아무도 언제까지 퇴고하라고 알려주지 않습니다. 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멈춰야 합니다. 퇴고하다 보면 ‘이 정도면 됐다.’는 느낌이 옵니다. 그때까지는 부지런히 퇴고해야 합니다.


2. 전후가 딴판이다.


청소하기 전과 청소하고 난 뒤의 방바닥은 빛깔도, 감촉도 다릅니다. 얇은 먼지 층이 밟히는 느낌에서 쫀득한 물기가 밟히는 느낌으로 변합니다. 세수를 하면 얼굴이 뽀얘지듯이 청소를 하면 집이 환해집니다.


글도 매한가지입니다. 퇴고하기 전과 퇴고하고 난 뒤의 글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처음 쓴 글과 발행한 글을 비교해보세요.


청소기를 다 밀고 필터를 비울 때마다 깜짝 놀랍니다. ‘이렇게 많은 먼지와 함께 살고 있다니’ 집안 구석구석 흩어져 있는 먼지를 한 곳에 모으면 주먹만 합니다.


퇴고도 같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입니다. 한 문장에 하나씩만 고쳐도 글이 달라집니다. 한 문장에 먼지 하나를 털어낸다는 생각으로 퇴고해보세요.


3. 하기 싫지만 해야 한다.


청소하지 않으면 집이 먼지투성이가 됩니다. 집에서 먼지 냄새가 납니다. 내 몸도 더러움에 익숙해져 같이 지저분해집니다. 정신이 산만해집니다.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퇴고하지 않은 글을 발행하는 건 청소하지 않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손님이 방문하는데 지저분한 집을 보여줄 수는 없죠. 손님이 오기 전에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청소해야 합니다.


읽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들려면 글을 정리해야 합니다. 퇴고하는 이유는 내 글쓰기 솜씨를 키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독자를 배려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4. 하고 나면 개운하다.


청소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땀이 나고 손목과 허리가 저리지만 깨끗한 집을 보면 뿌듯합니다. 청소하기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죠.


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깨끗이 정돈하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더 좋은 단어를 찾아 바꿨을 때는 짜릿하기도 합니다. 마치 퇴고하기 위해 초고를 쓴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5. 할수록 익숙해진다.


25평에서 33평으로 이사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넓어진 크기만큼 청소해야 할 공간도 늘었습니다. ‘집이 커서 좋기는 한데, 청소하는 데에는 아주 오래 걸리겠구먼.’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사라지기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익숙해지니 이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퇴고가 습관이 되면 은근히 재미있습니다. 아, 책의 퇴고는 다릅니다. 한 권 분량의 원고를 퇴고하는 건 진이 빠지는 일이죠.


그렇지만 브런치에 발행할 글 한 편을 퇴고하는 건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요리조리 글을 매만지는 것도 흥미롭고 글을 늘렸다 줄이는 것도 즐겁습니다. 어색한 글의 흐름과 못난 문장을 찾는 눈이 밝아지는 건 덤입니다.




날마다 물건을 정리하고, 주마다 대청소하는 게 생활의 일부인 것처럼 퇴고도 글쓰기의 일부분입니다.


비워야 할 것은 집뿐만이 아닙니다. 내 방의 먼지를 털어내듯이 쓸데없는 글을 덜어내 보세요.


불필요한 문장은 제거하고 제자리에 있어야 할 곳으로 문장을 옮기는 것. 청소하듯이 퇴고해보세요.


반짝반짝, 글이 한결 깨끗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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