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와 '생각'의 달리기 경주

by 조형근

하얀 화면에 커서가 깜빡인다. 키보드에 올려둔 손가락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글을 쓸지 오랜 시간 고민한다. 어떨 때는 글이 술술 써지는데, 어떨 때는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힘들게 첫 문장을 쓴다. 다음 문장을 쓰기가 한결 편해진다.


글쓰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쓰면서 생각하기’와 ‘생각하고 쓰기’


아무 글이나 일단 쓰는 게 좋을까.

아니면 글의 뼈대를 세운 뒤에 쓰는 게 좋을까.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


당신은 둘 중에 어떤 방식을 선호하는가?


1. 쓰면서 생각하기


글은 쓰기 시작하면 연이어 쓰고 싶은 게 떠오른다. 글을 쓰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장이 뇌리를 스치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다. 스스로 빠져드는 문장을 쓰면서 얻는 만족감은 글쓰기를 재미있게 만든다.


'쓰면서 생각하기'일상을 바탕으로 글을 쓸 때 유용하다. 과거의 에피소드, 오늘 겪은 일, 미래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쓰면 물 흐르듯 글이 써진다. 내가 평소에 경험하고 느낀 일이기 때문이다. 글을 빨리, 잘 쓰는 사람은 생각과 경험을 요약하고 풀어내는 데 능하다,


대신 글을 쓰면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틈틈이 점검해야 한다. 글이 글로서 힘을 발휘하려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해야 한다. 문단과 문단 사이에 연결고리가 허술하면 읽는 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무 말 대잔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 생각하고 쓰기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어떤 것을 쓸지 머릿속으로 구상한 다음 글을 쓴다. 핵심 문장을 먼저 생각한다. 서론, 본론, 결론에서 할 말을 정리하고 사이에 연결하기 위한 문장을 쓴다. 구조를 짜 놓으면 글이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


특히 책을 쓸 때는 얼개에 세심하게 신경 쓴다. 글을 쓰기 전에 목차부터 구상한다. 목차는 책의 설계도다. 설계도 없이 건물을 지을 수 없듯 목차 없이 책을 쓸 수 없다. 250페이지에 육박하는 글을 쓰는데 목차가 없다고 생각해 보라. 눈을 감고 빙판 위를 걷는 기분일 것이다.


2,000자 내외의 글을 쓸 때도 구조를 세우면 좋다. 글의 전체 흐름을 인지하면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촬영하는 감독과 배우처럼, 처음과 끝을 알고 있으면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있고 분량도 맞출 수 있다.


3. 쓰면서 생각하기 vs 생각하고 쓰기


사실 두 가지 방법은 칼로 두부 자르듯이 나눌 수 없다. 글을 쓰면 생각이 떠오르고 생각이 떠오르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둘은 공생 관계다.


글쓰기가 서툴고, 글쓰기에 습관을 들이고 싶다면 ‘쓰면서 생각하기’의 비중을 늘리는 걸 추천한다. 여러 번 구조를 구상하고 시뮬레이션까지 거쳐 글을 쓰려고 하면 글쓰기가 어려워진다. 생각만 하는 것보다 아무 글이나 한 자라도 쓰는 게 낫다. 완벽한 글은 없다.


글쓰기가 익숙하다면 쓰는 행위에 어려움이 없을 테니 구조를 짜고 쓰는 걸 권한다. 완벽한 글은 없듯이 완벽한 구조도 없다. 스스로 글을 써도 되겠다 싶은 순간까지만 간략히 구조를 스케치하고 글을 쓰면 좋다. 채색과 덧칠은 글을 쓰면서 한다.



쓰면서 생각하기, 생각하고 쓰기


초심자라면 8 : 2

숙련자라면 5 : 5의 비율로 섞는 게 적당하다.


박민정 작가는 소설 <세실, 주희>를 쓰면서 한 장면을 위해 수없이 구조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강원국 작가는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서 “나는 개요를 짜지 않는다. 나는 글의 최종 모습을 그릴 능력이 없다. 개요를 짜는 것은 시간 낭비이기도 하다.”라고 서술했다. 글을 쓰는 사람만큼이나 글을 쓰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글쓰기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생각이 먼저일까, 쓰기가 먼저일까. 굳이 꼽자면 쓰기를 택하고 싶다. 못난 글이라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백번 낫다. 활자라는 결과물을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은 문장을 부른다.


백지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답답하다면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면


모두 잊고 아무 자판이나 눌러보면 어떨까?

곧 한 편의 글이 완성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