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글은 없다.

by 조형근

여섯 살 내 딸은 몸에 열이 많다. 지금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두세 살 때는 자고 일어나면 베개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딸 옆에서 잠을 잘 때는 종종 깬다. 아직 부모가 좋은지 옆에 찰싹 달라붙고 머리를 들이민다. 딸은 윗옷을 올린 채 동그란 배를 드러내고 자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덮어주려는 나와 이불을 걷어차는 딸의 비몽사몽 기싸움(?)이 벌어진다. 몇 번 그러다가 포기하고 나만 혼자 이불을 덮는다. 다행히 딸은 감기에 걸리거나 잠을 설치지는 않는다.


딸은 잠을 잘 때 덥다며 이불을 차고

나는 추워서 이불을 코끝까지 덮는다.


나는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고

딸은 달콤한 음식을 좋아한다. (아직 어려서 그런 듯하지만)


사람마다 얼굴과 목소리가 다르듯 성향과 취향이 제각각이다. 100명이 있으면 100명 전부 다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서로 닮는다는 부부는 물론, 부모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자녀, 심지어 일란성쌍둥이도 다르다.


글쓰기도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의 수만큼 문장의 성격, 향기가 다르다. 똑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현상을 바라봐도 사람마다 다른 글을 쓴다. 들여다보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이 같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글은 없다. 만약 만인이 좋아하는 글을 썼다는 느낌이 들면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읽는 이의 직업, 지식, 경험, 환경, 가치관에 따라 받아들이는 건 천지차이다. 100의 반응을 기대해도 10만 호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사람이라도 더 좋아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글을 쓰면서 모두에게 인정받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독자 전부를 만족시키겠다는 강박은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글은 쓸 수 있다. 내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개성 있는(맛있는) 식당은 메뉴가 단출하다. 메뉴가 몇 개 없는 데도 불구하고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메뉴를 판매하는(일반적인) 식당은 요리는 다양하지만 오히려 인기가 없다.


소수라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을 읽다가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는 사람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단 한 명이라도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한다면 계속 글을 쓸 용기를 낼 것이다.




이 글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이렇게 보잘것없는 글을 남겨도 될까

누군가는 내 글을 싫어하지 않을까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 염려하지 말고 글을 쓰자. 다른 작가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여물지 않은 생각은 글을 쓰면서 다듬고 확장할 수 있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다. 게다가 누군가는 당신의 스토리에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을 것이다. 일석이조다.


100명이 들러서 50명은 좋아하고 50명은 싫어하는 식당

같은 시간 10명이 찾아오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식당


당신은 어떤 식당을 운영하고 싶은가?


나는 후자다. 내 요리를 맛보러 오는 사람이 적더라도 방문해주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다. 내 글이 이런 식당의 메인 메뉴였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글쓴이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음식이 맛없는 건 아닐까 지레짐작하지 말고 재료부터 준비하자. 누군가는 당신이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맛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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