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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 OST 타고 부산에서

by 메티콘

영화에서 OST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OST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Original Sound Track)의 약자로 영화의 배경 음악을 의미한다. OST는 분위기를 극의 분위기를 조절하고 영화 전체의 흐름을 조율하는 기능을 한다. OST는 배우들의 연기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영상이 의미하는 바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한다.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 감정선, 이야기의 흐름, 장면의 분위기, 상징성 등을 OST로 연출할 수 있다. 그렇기에 OST에는 감독의 연출 의도와 영화의 주제가 담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브로커〉의 OST는 정재일 음악감독이 만들었다. 정재일은 음악가, 가수 겸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로 〈옥자〉,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의 OST를 작곡했다. 〈오징어게임〉의 OST로 정재일은 한국인 최초로 ‘2021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HMMA)’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정재일의 〈브로커〉 OST에는 24곡이 수록되어 있다. 각 곡에는 일련번호와 제목이 달려 있다.

1. 계단 2. 정류장 3. 시작은…비 4. 새처럼 5. 처맛물 6. 가족여행 7. 뒤를 밟다 8. 바람에 실려 9. 기약 없는 이별 10. 동승 11. 멀리서 12. 상자 13. 배신 14. 야유 15. 도망쳐 16. 이 길은 어디로 17. 딸 18. 죽음 19. 옛친구 20. 달리기 21. 고마워 22. 용서 23. 우리 24. 기도

곡 순서는 스토리 흐름과 일치하지 않지만, 제목을 보면 얼추 영화의 장면을 가늠해 볼 수 있다. 24곡 모두 스코어 음악(score music)으로 영화에 직접 삽입된 곡은 21곡이다. 타이틀곡인 4. 새처럼과 9. 기약 없는 이별, 12. 상자는 편집 과정에서 빠진 듯하다. 상영 영화에 들은 21곡은 영화의 장면마다 감각 있게 스며들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브로커〉에는 정재일의 OST 외에도 인상적인 소스 음악(source music) 한 곡이 들어 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맨(Aimee Mann)이 부른 ‘와이즈 업(wise up)’이다. 영화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이 〈매그놀리아〉를 만들도록 영감을 주었다는 그 곡. 〈매그놀리아〉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차례로 ‘와이즈 업’을 나누어 부르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한다. 〈브로커〉에서도 ‘와이즈 업’이 들리는 장면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불법 입양시키려는 사람들과 형사들이 그들을 뒤쫓는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이다. 버려진 아기를 빼돌려 한몫 챙기려는 브로커 상현과 동수, 버려진 아기 우성과 아기 엄마 소영, 보육원에서 탈출한 해진은 각자의 사연으로 버려진 이들이다. 불법 입양의 현장을 덮치려는 수진과 이형사가 미행한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이들의 특별한 노정에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영화 속 OST를 따라 함께 가보자. (곡의 순서는 스토리 순서에 따랐다.)

1. 계단 (00:01:30, 1:46)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밤, 소영은 힘겹게 계단을 올라 부산의 한 교회 첨탑을 바라본다. 소영은 베이비 박스 아래 바닥에 아기 우성을 내려놓고 무표정하게 바라보다 자리를 뜬다. 그 장면을 차 안에서 잠복하며 지켜보던 형사 수진은 “버릴 거면 낳지 말라고”라고 혼잣말한다. 수진은 차에서 내려 우성을 앉아 베이비 박스에 넣어 준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처연한 피아노곡은 아기를 버려야 하는 소영의 비참함과 이를 지켜보는 수진의 착잡한 마음을 쏟아지는 빗소리와 어우러지며 표현하고 있다.

3. 시작은…비 (00:05:20, 2:29)

동수로부터 우성을 건네받은 상현은 승합차를 몰고 자신이 운영하는 세탁소로 향하고 수진이 그 뒤를 수진이 미행한다.

잔잔하면서도 빠른 템포의 피아노곡으로 빗속을 달리는 차량의 속도와 잘 맞는다. 잔잔하면서도 어두운 음정은 약간의 긴장감을 유발하고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넌지시 표현하고 있다.

2. 정류장 (00:14:12, 0:44)

우성을 찾으러 다시 교회에 들른 소영은 자신의 아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떠나고 그 뒤를 동수가 따라간다. 소영이 정류장에 있는 공중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동수가 막는다.

음울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신시사이저 곡이다. 암울하면서도 암시적인 곡조는 이제부터 시작될 사건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다.

7. 뒤를 밟다 (00:20:53, 2:02)

상현과 소영과 동수는 우성을 데리고 입양 희망자를 만나러 승합차로 영덕으로 출발한다. 그 뒤를 수진과 이형사가 차로 미행한다. 수진은 이형사에게 “알지. 반드시 현행범으로 체포할 거니까.”라며 결의를 다진다. 상현과 소영과 동수는 서로의 고향을 이야기한다.

빠르고 반복된 기타 선율이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록 불법 입양으로 각자의 몫을 챙길 목적이지만 길을 떠나는 설렘을 느끼게 한다.


16. 이 길은 어디로 (00:27:40, 0:54)

영덕에서 우성을 불법 입양시키려는 계획이 틀어진 상현, 소영, 동수는 해안 도로를 따라 울진에 있는 동수가 자란 보육원(해송원)으로 향한다. 수진과 이형사의 미행은 계속된다.

서정적인 곡조의 기타 곡으로 시골 해안 도로를 달리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이다. 곡이 주는 차분한 느낌은 이제 도착할 곳의 안정감을 암시하고 있다.

19. 옛친구 (00:40:43, 2:01)

소영과 말싸움을 한 동수는 밤중에 바닷가 공터에서 보육원 동생 시우와 깡통을 차서 소주병을 맞추는 놀이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시우는 동수에게 울진을 떠나 멀리 가서 보육원 동생들에게 희망이 되어 달라고 한다. 동수는 보육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오르고 나서 한숨을 내쉰다.

템포가 느린 기타 곡이 쓸쓸한 밤바다의 분위를 표현하고 있다. 낮고 무거운 음으로 이어지는 초중반은 보육원 출신들의 암울한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 높은 음으로 이어지는 후반은 세상살이가 쉽지만은 않은 동수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5. 처맛물 (00:43:52, 1:15)

보육원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소영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빗물을 맞으며 아기를 안고 옆으로 다가온 동수에게 어제 일을 사과한다. 소영이 자신이 처한 처지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자 동수는 “큰 우산. 둘이 쓸 수 있는 그런 거”라며 소영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느린 템포의 피아노 독주로 빗물이 떨어지는 아침의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강해지는 울림은 소영과 동수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짐을 말해 준다.

8. 바람에 실려 (00:49:04, 1:02)

수진은 상현과 동수를 현장 검거하기 위해 세팅을 한다. 상현 등은 수진이 세팅한 입양자를 만나기 위해 풍력단지가 펼쳐진 길로 달린다.

경쾌한 템포의 기타 연주가 펼쳐지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협주로 이어진다. 기타 음은 새로운 구매자를 찾아 자동차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길을 달리는 분위기 표현한다. 반면에 현악기의 음은 차 안에서 벌어지는 약간은 심각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말해 준다.


10. 동승 (00:55:20, 1:09)

가짜 입양 희망 부부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해진의 기척을 발견한 상현은 차를 멈춘다. 상현의 일행에 해진도 합류하게 된다. 시골길에서 갑자기 경찰차가 나타나서 승합차를 멈추게 한다. 경찰이 해진에게 다 같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해진은 롯데월드로 관람차를 타러 가족여행을 간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경찰은 롯데월드에는 관람차가 없으니 월미도로 가라고 한다. 그러자 상현이 월미도로 가자고 맞장구친다. 경찰은 상현을 해진의 아빠라고 생각하고 해진에게 말한다. 아빠에게 관람차뿐만 아니라 유람선도 태워 달라 해보라고. 해진은 큰소리로 “예!”라고 외친다.

차분하면서도 빠른 선율의 기타 독주이다. 급조되긴 했지만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상황 설정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14. 야유 (00:59:33, 0:27)

수진이 세팅한 가짜 부부는 동수의 질문에 걸려 들킨다. 해진은 들통난 어색한 연기를 야유한다. 수진의 계획은 어긋나고 상현 등은 우성을 데리고 떠난다.

신시사이저의 낮은 음과 높은 음이 빠르게 교차하는 리듬은 어쩌면 심각할 수도 있는 상황을 코믹한 분위기로 이끌어 간다. 우성에게 가족이 생겼기에 가능한 설정이 아닐까 싶다.


6. 가족여행 (01:00:03, 2:49)

상현 등은 수진이 세팅한 가짜 부부와 헤어진 뒤 세차장으로 차를 몬다. 자동세차기 안에서 해진이 창문을 열고 모두가 세차 물거품에 젖는다. 모두 웃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상현은 자기 본명이 하진영이고 상현은 아들이 태어나면 붙여 줄 이름이라고 털어놓는다. 소영도 자신은 이름은 선아가 아니라 문소영이라고 밝힌다.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하게 다가간다.

차분한 분위기의 기타 연주가 이어지고 후반부에 신시사이저의 높은 울림이 덧씌워진다. 차분한 기타 연주는 차 안에서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중심을 잡아 줄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게 한다. 소영이 솔직해지는 부분은 신시사이저의 음으로 깊은 울림을 표현한다.

13. 배신 (01:04:20, 0:55)

수진과 이형사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오는 소영을 차 안으로 데려간다. 수진 등과 헤어진 소영은 아이스크림 봉지를 버리고 상현 등이 머무르고 있는 모텔로 들어간다.

어둡고 몽환적인 신시사이저의 연주는 수진과 소형 사이에 뭔가 거래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어설프지만 가족처럼 지내게 된 사람들을 배신해야만 하는 소영의 복잡하고 암울한 심경까지도.

25. 에이미 맨(Aimee Mann)의 ‘와이즈 업(wise up)’ (01:19:17, 2:08)

낙태와 아기 유기의 잘잘못에 대해 소영과 말싸움을 치른 수진은 카페에서 들려오는 ‘와이즈 업’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영화를 보았던 추억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흘린다.

다음은 ‘와이즈 업’의 가사 번역 중 일부이다.

이건 아니잖아요

당신이 생각했던 것이

당신이 처음 시작했을 때에

당신은 해냈어요

당신이 원한 것을

그렇지만 지금 당신은 그걸 버거워해요

이제야 당신은 알게 되었네요

이런 상황은 멈추지 않고

지속될 거예요

이런 상황은 끝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현명해지기 전까지는

It's not

What you thought

When you first began it

You got

What you want

Now you can hardly stand it though

By now you know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노래는 수진의 착잡한 심경을 대신 말해 주고 있다. 부드러운 리듬과 기타 반주에 여자 가수가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가사는 앞으로 수진이 어떤 선택을 할지 보여 주고 있다. 노래는 “그러니까 그냥, 포기해요(So just, give up)”라는 가사로 끝을 맺는다.

15. 도망쳐 (01:28:01, 1:15)

태호는 상현이 세탁소를 하며 알게 된 사람의 아들인데 깡패들과 어울린다. 태호는 살해당한 우성의 친부 부인의 사주로 상현을 찾아온다. 동수는 태호를 기절시켜 쫓아오지 못하게 한다. 수진과 이형사는 동수가 GPS를 옮긴 엉뚱한 차를 추적하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상현 등은 울진에서 강릉으로 급하게 달아나서 서울로 가는 KTX에 몸을 싣는다. 소영은 허탕을 친 수진과 이형사에게 자신들의 행선지를 몰래 알려준다.

빠른 템포의 기타 연주 중간에 비올라 등 현악기의 연주가 덧씌워진다. 긴박한 리듬의 기타 리듬은 상현 등이 도주하는 다급한 상황에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반면에 유연한 현악기의 선율은 KTX에 승차하는 상현 등의 앞날에 어둡지만은 않은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 것을 보여 주고 있다.

20. 달리기 (01:32:39, 1:10)

서울로 가는 KTX에서 소영과 해진은 해진의 이름과 우성의 이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해진은 바다로 나아간다는 뜻이고 어른이 돼서 프리미어리그 같은 해외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 소영은 풀이해준다. 우성이란 이름은 소영이 직접 지어주었고 날개 우(羽)자에 별 성(星)으로 멀리멀리 갔으면 좋겠다는 뜻이라 소영은 알려준다. 해진이 바다라면 우성은 하늘 너머 별까지 날아가는 우주비행사나 파일럿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카메라는 KTX가 들어가는 터널 너머로 산천을 비춘다. 서울에 도착한 상현 일행은 새로운 입양자와 약속을 잡는다.

차분한 기타 연주에 유려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연주가 조화를 이룬다. 곡의 전반부는 소영과 해진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받쳐주고 후반부는 터널을 지나 서울로 향하는 KTX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3. 우리 (01:36:18, 2:06)

서울에서 윤씨 부부와 헤어진 상현 일행은 인천으로 가서 인천 투어 버스를 탄다. 월미도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고 게임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상현과 함께 대관람차에 탄 해진은 고소공포증이 있어 무서워한다. 상현은 토하려는 해진을 다독인다. 해진은 상현에게 세차장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어둡고 중후한 기타 독주가 이어진다. 함께 월미도로 떠나는 나들이임에도 밝지만은 않은 상현과 동수와 수진의 표정과 대관람차에서 고소공포증으로 무서워하는 해진의 상황을 말해 주고 있다.

22. 용서 (01:40:08, 3:35)

동수는 우성을 안고 소영과 대관람차의 한 방에 탄다. 동수는 다섯이 한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소영은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선 자신이 체포될 거니까 그렇게 안 될 거라고 한다. 자신이 우성 친부의 살해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리자 동수가 눈을 가려준다. 소영은 무섭다며 동수의 손목을 붙잡는다. 동수는 소영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고 한다. 소영은 자신이 형편없는 엄마니까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하자 동수는 가린 손을 내리고 자신이 우성을 대신해서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소영이 우성을 버린 건 살인자의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지 않냐고 동수가 묻자 소영은 버린 건 버린 거라며 자책한다.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이어진다. 잔잔한 선율에서는 소영을 향한 동수의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약간의 긴장감마저 느껴지는 선율에서는 자신을 자책하는 소영의 북받치는 감정이 잘 드러나도록 한다.

17. 딸 (01:47:19, 0:52)

상현은 서울에서 딸을 만난다. 상현은 내일 큰돈이 들어오니까 다시 가족이 합쳐 살자고 하자 딸은 “돈은 됐으니까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라고 엄마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엄마에게서 사내아이가 태어날 거라고 이야기한다. 딸과의 어색한 만남은 그렇게 끝나고 만다. 둘의 대화를 미행하는 수진이 듣는다. 상현은 딸에게 주려던 원숭이 인형을 들고 허탈하게 걷다 유아복 가게에서 멈춘다. 상현의 뒤를 따르던 수진은 그냥 지나쳐 가고 상현을 수진을 바라본다.

빠르면서도 둔탁한 리듬의 기타 연주이다. 딸에게서 일방적인 관계 단절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한 채 거리를 방황하는 상현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21. 고마워 (01:51:57, 0:50)

우성을 윤씨 부부에게 입양 보내기 전날 모텔방에서 소영은 해진으로부터 모두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동수가 불을 끄고 소영은 침대에 누워 해진, 상현, 동수, 우성 각각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그러자 옆에 잠자코 있던 해진이 소영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답한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다들 어둠 속에서 깊은 상념에 잠긴다.

서정적인 리듬의 기타 연주이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이어지는 기타 음은 상념에 빠진 소영과 상현과 동수를 차분하게 보여 주고 있다.

18. 죽음 (01:55:29, 1:44)

밤중에 소영이 수진을 만난다는 걸 알게 된 상현은 소영이 자기들을 팔아넘길 수 있다고 동수에게 이야기한다. 이제 소영은 ‘아기의 엄마’가 되었음으로. 상현과 동수는 해진과 우성을 데리고 모텔을 나선다. 그 앞을 태호가 막아선다. 상현은 혼자서 태호와 실랑이하다 죽은 우성 생부의 처가 우성을 키우면 어떻게 되겠냐며 붙잡는다. 그리고 자기는 더는 동수에게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덧붙이며 돈이 생기면 같이 장사를 하자고 한다.

기괴하고 묵시록적인 신시사이저 리듬이 이어진다. 곡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누군가가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의 흐름을 미리 암시하고 있다.

24. 기도 (01:58:51, 1:18)

동수와 해진이 우성을 데리고 윤씨 부부와 만나고 있는데 수진이 이끄는 경찰이 들이닥친다. 동수를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한다. 소영의 상황을 묻는 동수에게 수진은 자수했다고 답한다. 동수는 수진에게 우성을 안기며 순순히 연행된다. 상현은 기차역 대합실에서 태호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애절한 리듬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연주가 이어진다. 태호의 사망 뉴스를 지켜보는 상현과 체포된 동수의 암울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태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3. 시작은…비 (02:00:23, 2:29)

부산으로 돌아온 수진과 이형사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수진은 바닷가에서 우성이를 부르며 선호와 놀고 있는 훌쩍 자란 우성에게 달려간다. 이어서 소영에게 모두의 상황을 알리는 수진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소영은 교도소에서 출소했으며 수진이 우성을 맡아 기른 지 3년이 되었다. 수진은 이달 15일 정오에 1시간 동안 우성을 데리고 동수와 해진, 윤씨 부부와 부산의 공원에서 보기로 했다고 전한다. 상현의 소식은 오리무중이란다.

영화 앞부분에서 나왔던 ‘시작은…비’가 재사용 되었다. 시작부에서는 잔잔하면서도 빠른 템포의 피아노곡이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넌지시 표현했다면 종결부에서는 삼 년간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밝지만도 않은 멜로디는 상현, 동수, 소영, 해진, 우성이 각자 저마다의 녹록하지 않은 형편대로 지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1. 멀리서 (02:04:04, 3:47)

소영은 수진의 소식을 듣고 일을 마치고 우성을 만나러 달려간다. 상현은 승합차에서 몰래 소영이 뛰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곤 차의 시동을 걸고 그 자리를 떠난다. 차 안에 매달린 액자에는 상현, 소영, 동수, 해진, 우성이 월미도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차가 달리며 액자가 흔들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쓸쓸한 감성이 짙게 배어나는 피아노 연주로 이어지는 클로징 크레딧 곡이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멜로디는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있을 아픔과 상처를 감싸 안고 있다. 그리고 객석에서 일어나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를 곱씹어 보게 한다.

지금까지 정재일이 〈브로커〉를 위해 작곡한 21곡과 에이미 맨의 ‘와이즈 업’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과 음악이 주는 느낌에 대해 살펴보았다. 정재일은 〈브로커〉 OST를 만든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피아노와 기타의 음 하나하나가 아주 정확한 장소에 나오길 바랐다. 그렇게 하기 위해 계속 영상을 보며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 자체는 좀 허술해지게 됐지만 좋은 스코어로 기능할 수 있길 원했다.”

영화의 장면들을 OST로 풀어내기 위한 정재일의 고심을 읽어 낼 수 있는 말이다. 정재일은 ‘음 하나하나가 감정적이거나 장식적으로 쓰이지 않고 장면들에 맞게 하려면 본인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라고 제작 과정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영화가 로드무비 형식을 따르고 있기에 정재일이 책임을 맡은 OST도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상황을 잘 뒷받침 해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스토리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관객들에게 더욱 풍부한 몰입감과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정재일이 음악감독을 맡고 OST를 만든 덕분에‘〈브로커〉의 퀄리티가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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