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원더풀 라이프』,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by 메티콘

『원더풀 라이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원더풀 라이프〉를 원작으로 쓴 소설이다. 일본어판 『원더풀 라이프』는 1999년 3월 18일에 발간되었는데,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하기 한 달 전이었다. 영화의 개봉에 맞춰 영화를 원작으로 한 동명 소설을 내는 이유는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영화에서 미처 발견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점들을 다시 되새겨 보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Clipboard01.jpg


고레에다는 소설의‘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 『원더풀 라이프』는 같은 이름의 영화가 기본이지만, 단지 영상을 문자로 옮겨놓은 것은 아닙니다. 각본에 살을 붙여 부풀린 것도 아닙니다. 이번에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영상을 활자로 정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형태로 일단 부풀어 오른 『원더풀 라이프』의 모티프를 활자라는 영역으로 다시 해방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소설을 그 자체로 독립된 작품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 말은 고레에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화면에 미처 다 담아낼 수 없었던 것들을 문자로 풀어내어 소설로 만들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러니 소설이 시나리오나 영화를 단순히 글로 옮긴 영화 홍보용이 아닌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보아 달라고 밝히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제작할 때 취재 대상에게 감정을 일부러 싣거나 영상에 해설을 넣지 않으려고 했다. ‘당신은 내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촬영하는 것이 타자를 영상에 담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당신은 나다’라는 신의 시점을 십분 활용하였다. 다시 말하면 등장인물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글로 고스란히 옮겨 썼다.


고레에다 감독은 『원더풀 라이프』에 부모님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을 반영했다. 10년간 떨어져 살게 된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에 더해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이야기, 앞으로 다가올 세대가 겪어낼 이야기를 엮어 넣었다. 그리고 고레에다 감독이 12년간 영상을 제작하며 느꼈던 감정과 자신의 모습을 소설에 투영했다.

영화는 실제적이고 세밀하게 만들어진 배경 세상에서 등장인물의 연기로 관객들을 어필하지만, 소설은 등장인물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로 독자에게 호소한다. 바꿔 말하면 영화는 등장인물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외부로 드러내 보이는 ‘보여주기’에 걸맞은 방식에, 소설은 그것을 글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서술하기’에 알맞은 방식이다. 고레에다 감독이 이러한 영화와 소설의 특성을 이해하고 〈원더풀 라이프〉가 만든 영화의 세계를 『원더풀 라이프』에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 제목, 줄거리, 소제목


영화의 제목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원더풀 라이프〉와 〈ワンダフルライフ〉이고 영어로 〈After Life〉라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후 세계이다.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시오리와 모치즈키의 눈길이 향하는 쪽에 있는 “당신에겐 있나요? 영원히 머물고픈 소중한 기억”이라는 홍보 문안에 이르게 되면 죽어서도 꼭 간직하고 싶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망자들의 인터뷰, 인생을 회고하는 비디오 시청, 영화 제작 과정 등 자세한 과정으로 전개된다.


Clipboard02.jpg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모치즈키, 시오리, 스기에, 가와시마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옥과 같은 세계에서 매주 망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망자들의 사연을 듣고 천국으로 갈 때 꼭 함께하고 싶은 기억 하나만을 정해서 영화로 만든다. 망자들은 영화를 보며 행복하게 천국으로 가게 된다. 새롭게 시작하는 주에 망자 22명이 이승에서 올라오고 나카무라 소장은 그들은 모치즈키 등에게 나누어 맡긴다. 대부분은 정한 기한 내에 함께할 기억을 정한다. 하지만 ‘살았던 증거’를 찾지 못하는 와타나베와 고를 기억이 없다는 이세야는 기한을 넘긴다. 와타나베는 자신의 인생을 녹화한 71개의 비디오를 시청하며 인생을 회고하고 결국 인생 말년에 공원에서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 장면을 선택한다. 이세야는 끝내 기억을 정하지 않고 연옥에 남는다.


『원더풀 라이프』에는 영화에는 없는 소제목이 등장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소설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독자들이 분명하게 이해하게 하려고 영화에는 없는 소제목을 활용했다.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월요일⎯Reception/환영, 화요일⎯Remembering/상기, 수요일⎯Regret/후회, 목요일⎯Relationship/관계, 금요일⎯Responsibility/책임, 토요일⎯Requiem/장송, 일요일⎯Resolution/결단, 월요일⎯Refrain/반복

영화에서도 일주일의 시간 구분을 위한 요일을 표시하는 장면은 나온다. 하지만 그것들은 단순한 요일의 구분을 나타낼 뿐 의미를 직접 드러내지 않아 소제목의 역할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설에서는 요일과 함께 각 요일이 상징하는 단어를 묶어 소제목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징하는 영어 단어들은 모두 “Re”로 시작한다. “Re”라는 접두사는 “뒤로 또는 원래 장소로 돌아가다”와 “다시, 새롭게, 한 번 더, 되돌리기, 뒤로 가기” 등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망자들이 인생을 회고하고 새롭게 조명해 본다는 설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Re”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망자들이 거쳐야 하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어 각 요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시오리


월요일은 연옥에 오는 새로운 망자들이 맞이하는 날이다(월요일⎯Reception/환영). 나카무라 소장은 22명의 망자를 모치즈키에게 7명, 스기에에게 7명, 가와시마에게 8명을 배정한다. 세 명의 직원은 각자의 면접실에서 망자 각각에게 애도를 표하고 망자가 사흘 안에 인생 중에서 소중한 추억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전한다. 그렇게 고른 추억은 이곳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이 영상으로 재현하며 망자들은 그 영상을 보고 하나의 추억만을 가슴에 안고 저세상으로 가게 된다고 부연한다.

월요일은 모치즈키 등이 망자에게 연옥을 소개하는 날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모치즈키 등이 어떤 사람들인지 소개를 받는 요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모치즈키와 함께 이야기의 한 축을 이끌어가는 시오리를 소설에서는 어떻게 소개하는 지 살펴보자.

영화는 모치즈키와 가와시마가 지난주에 보내드린 야마다 할아버지의 뒷담화를 하며 사무실로 출근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출근한 사무실에서 사오리와 스기에가 청소를 하고 있다. 시오리는 소녀티를 갓 벗은 싶은 젊은 여자다. 적극적으로 걸레질하는 스기에와는 다르게 시오리는 빗자루로 설렁설렁 바닥을 쓴다. 모치즈키의 보조인 시오리는 망자들을 접견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참관자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시오리는 사진이 벽에 어지럽게 붙은 방에서 하루 일정을 정리한 회람판을 집어 든다. 모치즈키에게 회람판을 전하러 가는 시오리는 머리를 거듭 매만지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사오리는 모치즈키에게 회람판을 건네고 읽는 책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시오리가 읽는 책은 세계대백과사전이란다.

소설은 추운 날씨에 이불 밖으로 나온 발가락이 시림을 느끼는 시오리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왼발 발가락 끝이 시리다. 거기만 이불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험하게 잔다고 어머니에게 자주 꾸중을 들었다’ 사토다카 시오리는 감각을 잃은 발을 다시 이불 속으로 집어넣고 다른 쪽 발끝으로 싹싹 비벼대며 침대 안에서 살짝 실눈을 떠보았습니다. (중략)

그녀는 이불 안에서 지내는 밤이라고도 아침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이 시간이 좋았습니다. 30분쯤 이런 행복한 시간 속에서 꾸물거린 뒤에야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것도 여기 오기 전에 입었던 고등학교 교복보다는 훨씬 센스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그리고 애용하는 노트와 스케치북을 겨드랑이에 낀 사오리는 방문을 열고 직원실로 내려갔습니다. (『원더풀 라이프』, pp. 12~13)

소설에서는 시오리라는 인물을 영화에서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출근해야 하는데 이불속에서 30분간 뭉그적거리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출근을 별로 내켜하지 않고 맡은 일에도 적극적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인상을 준다. 어렸을 때부터 잠을 험하게 잔다고 어머니에게 꾸중을 자주 들었다면 시오리와 엄마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고 남음이 있다. 딸이 잠을 험하게 잔다고 꾸중하는 어머니는 너그러움보다는 규율로 통제함으로써 딸을 대했을 것이다. 시오리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사랑보다는 엄격함을 느꼈지 않았을까.

시오리와 스기에가 사무실을 청소하는 장면을 소설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시오리는 대걸레를 들고 그곳만 햇살이 드는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이불 속의 온기를 그리워하듯이 햇볕 속을 왔다 갔다 합니다. 별로 의욕을 보이지 않는 그녀에게 보라는 듯이 스기에는 윗도리를 벗고 감색 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화난 듯한 얼굴로 걸레질을 계속했습니다. (『원더풀 라이프』, pp. 14~15)

소설에서는 시오리가 햇볕 드는 자리에 서서 청소를 슬렁슬렁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참 선임인 스기에가 그런 시오리를 못마땅해 하는 모습까지. 덤으로 소설에서는 시오리가 실수로 층계참의 창유리를 깨드린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모치즈키가 면접실에서 인터뷰할 7명의 서류를 살펴보는 동안 시오리가 창가에서 백과사전을 보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다만 그녀의 모습은 뭔가를 찾아본다기보다는 그저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한 심심풀이로만 보였습니다. 확실히 그녀도 처음에는 심심풀이였습니다. 이 시설에 오기 전까지 시오리는 활자를 읽은 습관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삽화와 사진이 잔뜩 있어서 그녀는 솔직히 그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지난가을에 제1권 1페이지의 ‘아이(藍, 쪽)’부터 읽기 시작하여 지금은 385페이지의 ‘아프리카’에 이른 참입니다.

‘뭐, 시간만은 남아돌 만큼 많으니까.’

시오리는 은밀히 몇 년이 걸리더라도 전체 31권인 백과사전을 다 읽겠다는 어린애 같은 목표를 세워두고 있습니다. (『원더풀 라이프』, p. 24)


이 대목은 시오리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주고 있다. 여고생이었던 시오리의 학습태도를 가늠하게 한다. 시오리에게 백과사전은 공부나 지식을 쌓는 도구가 아니라 심심풀이로 무료한 시간을 때울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의 화자는 시오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31권의 백과사전을 다 읽겠다고 목표를 세운 것을 두고 어린애 같다고 평하고 있다.

모치즈키가 성실하게 망자들을 인터뷰하고 있는 동안 그 옆에서 빈둥거리는 시오리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그리고 있다.

1년 동안 그런 사람들을 접해온 시오리는 첫 인상만으로 그 사람이 제한 시간까지 추억을 고를지 어떨지 대충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조라고 해도 일은 대부분 모치즈키 혼자 해도 충분했기 때문에 그녀는 옆에 앉아 스케치북에 망자들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고를 수 있을지 없을지를 ○X로 예상하며 놀았습니다. 옆에서 보면 불성실하게 보이겠지만, 그런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낮 동안의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원더풀 라이프』, p. 28)

여기서 시오리에 더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시오리는 연옥에 온 지 1년이 되었고 모치즈키가 일을 하는 동안 그림을 그리거나 내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소설에서는 영화에서 시오리에게 집중하느라 소홀히 했을 시오리의 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방 벽에 온통 붙어 있는 스냅 사진들이 어떤 사진들인지 설명하고 있다. 책이 한 권도 보이지 않고 다채로운 그림을 그린 주워온 돌만 들어서 있는 책꽂이도. 방에서 정리한 회람판을 들고 모치즈기를 만나러 방을 나서는 시오리의 모습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대충 작업을 끝낸 시오리는 정리한 자료를 들고 힘차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입구 옆 벽에 걸린 동그란 거울을 들여다보고 두세 번 머리를 매만지고 나서 문손잡이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뭔가 잊어버린 것이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거울 앞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울에 얼굴을 최대한 붙이고 앞머리 몇 가닥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들어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이제 됐어’하는 듯이 거울 속의 자신과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방을 나섰습니다. (『원더풀 라이프』, pp. 35~36)

여기서 나타난 시오리의 모습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나가면서 외모에 신경을 쓰는 여자의 모습임에 틀림없다. 소설에서는 시오리가 모치즈키를 만나러 가면서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시오리의 마음과 행동을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오리가 모치즈키에게 회람판을 전하러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리고 그와 헤어져 방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이렇게 상술하고 있다.

탕, 탕, 탕, 타당.

모치즈키의 방은 1층에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 오른편 안쪽에 있습니다.

층계참에 울리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시오리는 자신이 살짝 들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타당, 타당, 타당, 탕.

계단을 내려가는 리듬이 심장 소리와 마찬가지로 조금씩 빨라지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중략)

“수고했어요.” 온화하게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한 모치즈키는 곧 일어났습니다. 시오리는 이 한순간에만 보이는, 책을 읽고 있는 그의 옆얼굴이 좋았습니다. (중략) (『원더풀 라이프』, pp. 36~37)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중얼거린 말이 상대에게 저대로 전해졌는지 어떤지도 모른 채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푹 가라앉은 마음으로 복도를 걸었습니다. 등 뒤로 모치즈키가 자료 정리 방법에 대한 의견인지 충고인지를 한두 마디 한 것 같기도 했지만 그녀의 귀에는 이제 그의 목소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오리는 모치즈키의 말에 돌아보지도 않고 뭐라고 모호한 대답을 하고는 조금 전에 뛰어내려온 계단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올라갔습니다. (『원더풀 라이프』, p. 39)


모치즈키를 만나러 가는 시오리의 들뜬 발걸음을 소설에서는 계단 내려가는 소리와 그녀의 마음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옆얼굴에 반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사무적으로 대하자 실망스런 상황을 푹 가라앉은 마음과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타내고 있다.

지금까지 영화와 소설에서 월요일의 시오리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살펴보았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월요일에 소설에서 꼼꼼하게 기술한 시오리에 대한 정보는 그녀가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취하는 행동과 심리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소설에 영화를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서 상세하게 서사를 채워 넣어 독자들이 영화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을 풍부하게 제공한다. 고레에다 감독은〈원더풀 라이프〉를 본 관객뿐만 아니라 소설로 『원더풀 라이프』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작품이 자연스럽게 다가서게 하기 위해 상세하고 정교하게 소설을 썼다.

∎〈원더풀 라이프〉에 나오지 않았던 망자들을 위한 배려

나카무라 소장은 22명의 망자가 연옥에 왔다고 했으며 모치즈키 등은 망자들의 사연을 인터뷰했다. 하지만〈원더풀 라이프〉에서는 22명의 망자가 모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22명 중 17명뿐이었다. 영화가 두 시간 동안 주제 중심의 스토리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22명의 망자들의 사연 모두 담을 수 없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소설에서 이름이 등장하는 순서로 정리한 명단은 다음과 같다. 밑줄 친 다섯 명은 영화에서 사연은커녕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1. 다카하시 데루마사, 2. 고리 요네, 3. 다타라 기미코, 4. 야마모토 슈지, 5. 와타나베 이치로, 6. 이세야 유스케, 7. 쇼타 요시스케, 8. 니시무라 기요, 9. 가네코 요시타카, 10. 오쿠노 신이치로, 11. 노모토 도시오, 12. 히라카와 나나에, 13. 아라키 가즈지, 14. 오쿠마 미치, 15. 요시모토 가나, 16. 엔도 구니오, 17. 노마 도미코, 18. 분도 다로, 19. 김계옥(사오토메 게이코), 20. 다카마쓰 지에, 21. 아마노 노부코, 22. 고지마 마사아키

영화에 비해 그러한 제약이 덜한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22명의 사연을 다 확인할 수 있다. 이승에서 사라져 잊히는 존재가 되었는데 연옥과 저승에서조차 기억되지 않는다면 한이 맺힐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고레에다 감독은 그들의 사연을 소설에 실음으로써 영화에서 잊힌 망자들의 아쉬움을 풀어주고 있다.

∎노마 도미코


다섯 명 중 특히 눈길이 가는 망자는 17. 노마 도미코이다. 화요일 면접에서 “살았던 증거”를 찾고 싶다고 말한 와타나베는 맞은편 면접실에서 나오는 노마 도미코를 만난다. 노마 도미코는 와타나베와 차를 마시며 여학교 시절 졸업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졸업식 노래를 부른 기억으로 정했다고 이야기한다. 이어서 결혼 이후의 삶은 힘들었다고 말한다. 와타나베는 그녀의 말에 공감을 하며 5년 전에 죽은 아내의 고마움을 깨닫게 된다.

수요일에도 기억을 정하지 못한 와타나베는 다시 노마 도미코와 만난다. 와타나베는 왜 기억을 정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그녀는 그런 와타나베에게 ‘야구 드래프트 회의’ 예를 들면서 자신들에게는 스스로 기억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상기 시킨다. 와타나베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거부감을 누그러뜨린다.

목요일에 와타나베는 정할 기억을 찾기 위해 모치즈키가 준비한 인생 비디오를 시청한다. 와타나베는 자신을 부러워하는 모치즈키에게 거친 말을 쏟아 붓는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 와타나베는 시청각실 문을 열고 나오다 옆 시청각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노크를 한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노마 도미코이다. 그녀는 와타나베에게 졸업식 대신 죽기 1년 전의 남편과의 추억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와타나베에게 그녀의 비디오를 보여준다. 병을 앓은 그녀를 위해 평생 폐를 끼친 그녀의 남편이 죽을 끓여 나르다 쏟아버리고 허둥대는 장면이 한편의 희극처럼 보인다. 그녀는 혼자 남겨두고 온 남편에게 서비스를 하는 차원에서 비디오로 본 기억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와타나베의 경직된 마음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풀어지기 시작한다.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노마 도미코와 와타나베의 만남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진행되는 스토리로 볼 때 그녀가 와타나베가 결정을 내리는 데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 그녀와 와타나베의 이야기가 등장했더라면 스토리의 진행이 보다 원활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의 스토리를 기초로 해서 소설의 스토리를 전개한다. 하지만 영화에는 없었던 혹은 영화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었던 이야기들을 삽입하여 소설에서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엮어 간다.


지금까지 고레에다 감독이 〈원더풀 라이프〉를 『원더풀 라이프』에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제목의 의미와 대략적인 줄거리, 그리고 소제목이 소설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는지 알아보았다. 영화와 소설에서 핵심적인 인물 중 하나인 시오리를 소설에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소설이 갖는 서술의 힘을 인지할 수 있었다. 소설에는 영화에 나오지 않았던 망자들의 사연이 등장하는데 이는 고레에다 감독의 배려를 돌아보게만들었다. 소설에서는 영화에 없었던 노마 도미코와 와타나베의 이야기를 삽입함으로써 스토리의 풍성함을 추구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의 컷을 소설의 문장으로 번역하여 새로운 작품을 완성했다. 영화와 그에 기초한 소설은 많은 공유점을 갖지만 각각의 장르가 갖는 특성이 다르다. 그렇기에 그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때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고레에다 감독은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영상을 제작했다. 관객들은 고레에다 감독의 카메라에 담긴 타자를 보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등장인물의 내면을 심도 있게 그려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를 추가함으로써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였다.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의 심정을 이해함으로써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두 작품은 태생적 특성상 스토리의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각자 독립된 작품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 OST 타고 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