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천의 터줏대감 까치
아침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로 옥구천변을 따라 출근하다 보면 거의 매일 마주치는 새가 있다. 바로 까치다. 둑마루를 따라 높게 자란 플라타너스나 회화나무에 튼 둥지에서 날아 내려온다. “깍깍” 울기라도 하면 오늘은 무슨 반가운 소식이라도 들려오려나 기대를 걸기도 한다. 일 년 내내 옥구천을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까치. 오늘은 옥구천의 터줏대감인 까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자전거를 멈추고 풀밭에 내려앉은 까치를 가만히 지켜본다. 까치의 부리, 머리, 가슴, 등은 검은색으로 윤기가 흐른다. 배와 허리는 새하얀 깃털로 덮여 있다. 나는 까치의 몸 색깔이 검은색과 흰색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날개깃을 자세히 보니 초록색 같기도 하고 파란색 같기도 한 빛깔이 있다. 꼬리는 단순히 검은색이라고 생각했으나, 연한 청록색이 섞여 있다. 맵시롭고 강인하게 생긴 다리는 검은색이다. 몸 전체 길이 중 꼬리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 같다. 멋지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까치의 생김새에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모습)’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전기자전거가 달려오며 경적을 울리자, 까치가 날아오른다. 넓고 둥근 날개를 펄럭이며 플라타너스 가지에 내려앉는다. 발가락으로 가지를 꽉 붙잡고 꼬리를 위아래로 까딱거린다. 마치 광대가 줄을 타며 부채를 흔들며 중심을 잡는 듯하다. 무슨 벌레라도 발견했는지 날개를 접은 채 가볍게 통통 튀어 바로 옆 가지로 옮겨간다. 날개를 조금 펴고 날갯짓해서 옆 나뭇가지로 이동한다. 갑자기 날개를 쭉 펼친 채 땅으로 급하게 선형을 그리며 내려선다. 지렁이라도 잡았는지 부리에 뭔가를 물고 둥지를 향해 파닥파닥 날아오른다. 까치의 비행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매처럼 위압적이지도 않고, 황새처럼 둔탁하지도 않으며, 참새처럼 부산스럽지도 않다. 단아하고 부드럽다.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플라타너스와 회화나무의 우듬지 아래쪽에 둥글고 넓적한 둥지가 여러 개 보인다. 튼튼한 줄기와 강한 가지 사이에 촘촘하게 잔가지를 엮어 견고하게 만든 멋진 보금자리이다. 비가 와도 새지 않고 어미 새만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안전한 둥지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니, 인간의 펜트하우스도 부럽지 않다. 까치는 한 지역에서 매년 새로운 둥지를 만들고, 예전에 사용했던 둥지는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여러 개의 둥지가 보였지만, 그에 비해 까치의 수가 적다고 느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군.
퇴근길에 잔잔한 물가에 앉아 있는 까치를 본다. 까치는 자기 모습을 물에 비춰보고 있는 듯하다. 이 까치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알아보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이다. 과학자들은 여러 조류를 포함한 수많은 동물에게 거울 실험을 진행했지만, 오직 인간과 같은 대형 포유류만이 자기 모습을 인식하는 결과를 보였다. 그러나 까치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는 행동을 보였을 때, 과학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그런 까치라면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하루를 되돌아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나보다 훨씬 나은 듯하다.
까치는 한곳에서 살아가는 텃새로,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전래 동요에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와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같은 전래 동요에서 친숙하게 나타난다. 영국에서는 길에서 마주치는 까치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요인 ‘까치 한 마리는 슬픔(One for sorrow)’이 전해진다.
한 마리는 슬픔이 오고,
두 마리는 기쁨이 오고,
세 마리는 딸이 생기고,
네 마리면 아들이 생기고,
다섯이면 은화가 생기고,
여섯이면 금화가 생기고,
일곱이면 비밀이 생겨,
절대 말하면 안 되는.
여덟이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아홉이면 키스하게 되고,
열이면 새 한 마리가 생겨,
그러니 까치를 놓치면 안 돼.
One for sorrow,
Two for joy,
Three for a girl,
Four for a boy,
Five for silver,
Six for gold,
Seven for a secret,
Never to be told.
Eight for a wish,
Nine for a kiss,
Ten for a bird,
You must not miss.
영국 사람들은 아침에 일을 나가거나 길을 떠날 때 까치를 보았을 경우 그날의 운세를 점쳤을 수도 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여기는 것과 유사하다.
옥구천을 떠나지 않고 둥지를 틀어 새끼를 기르는 까치는 한때 시흥시를 대표하는 새였다. 우리나라에서 길조로 여겨지는 새 중 단연 으뜸이며, 오작교(烏鵲橋) 설화뿐만 아니라 은혜를 갚은 까치 이야기까지 전해져 여러 지자체에서 까치를 상징으로 삼았다. 시흥시도 1978년에 “힘과 무게 속에 은은한 정취를 자아내고 장수를 상징한다.”라는 미사여구를 붙여 까치를 시조(市鳥)로 정했다. 그러나 2003년에는 시흥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고 지역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이유로 시의 상징에서 퇴출했다. 지역적 연관성이 부족하고 여러 지자체에서 중복으로 지정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까치의 자리는 포동, 월곶동, 장곡동 일대 28만 평의 시흥 갯벌로 대체되었다. 옥구천의 까치는 인간들의 오락가락하는 행정에도 이러쿵저러쿵하지 않고 오늘도 담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