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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

by 메티콘

“옛날 옛적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어요. 토끼는 매우 빨랐고, 거북이는 매우 느렸어요.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느림보라고 놀려대자, 거북이는 토끼에게 달리기 시합을 해보자고 했답니다. 한참을 달린 토끼는 거북이가 멀리 뒤쳐진 것을 보았어요. 토끼는 마음을 놓고 낮잠을 잤어요. 그런데 엉금엉금 기어온 거북이가 잠이 깊이 든 토끼를 앞질러 갔지요. 잠에서 깬 토끼는 목표점에 다다른 거북이를 보고 서둘러 뛰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승리는 중간에 한눈을 판 토끼가 아닌 꾸준한 거북이가 차지하고 말았답니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가 주는 교훈은 ‘토끼처럼 재주만 믿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패배하고 비록 거북이처럼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승리한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달리기 시합의 결과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솝의 기준은 승자와 패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준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후세에 전했다. 나 또한 학교에서 동화책에서 TV에서 그렇게 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수긍했다.


당연하게 여겼던 이솝의 교훈에 뭔가 잘 못된 점이 있다는 생각이 언제인가부터 들기 시작했다. ‘인생이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경주인가?’ ‘토끼처럼 쉬었다 가면 큰 잘못인가?’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에게 남은 것은 뭐지?’ ‘쉬지도 못하고 달리기만한 거북이를 과연 승자라고 할 수 있을까?’ 등등. 그렇다. 승패만을 중요시하는 대립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럴듯했는데 관점을 바꾸니 여러 의문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솝의 교훈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 하나의 관점만으로만 인생을 바라보면 나는 인생의 패배자였다. 내 앞에는 언제나 나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무리 쫒아가려해도 바짓가랑이만 찢어졌다. 자기 개발서를 읽고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자괴감이었다. 돌이켜 보니 아무리 발버둥 쳤어도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를 패배자로 만드는 건 내가 살아온 인생 경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경직된 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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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에 옷 색이 바래 듯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만 바라봤던 시각이 점점 퇴색해 가고 있다. 그 자리를 독서와 경험과 통찰을 통한 여러 생각들이 채우고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되살아 나 듯 이솝의 관점이 불쑥 솟아오르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한숨 늘어지게 자다 다시 뛰는 토끼를 생각한다. 초조해하지 않고 결승점이나 거북이와 상관없이 그저 즐겁게 깡충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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