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진행하는 체험형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기 위해 4월 27일에 나는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예산 덕숭산 자락에 자리 잡은 수덕사를 찾았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난 길로 차를 몰아 템플스테이 전용 주차장에 다다랐다. 차에서 내리니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햇볕이 따가웠다. 아직 4월이었지만 때 이른 초여름 날씨로 긴 팔 외투가 부담스러운 날씨였다. 짐을 챙겨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오솔길을 따라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넘어서니 천년 고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위압적이지 않아 포근한 느낌마저 드는 능선 아래로 여러 전각과 탑들이 보였다. 석가탄신일이 채 이십 일도 남지 않아서인지 오색연등이 절 마당에는 빼곡했다.
우리는 이정표를 찾아가며 경내를 동편에서 서편으로 가로질러 갔다. 주말이어서인지 탐방객들로 북적였다. 사람들과 비켜서며 전각들을 지나 목적지인 심연당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이었다. J 템플스테이 팀장님을 찾아 하룻밤 묵을 방을 배정받고 관음행 보살님으로부터 갈아입을 옷과 이불 커버를 받았다. 같이 온 동아리 사람 다섯은 모두 여자라 완월당의 큰방에 들어가기로 했고 홀로 남자인 나는 명선당의 1인실에 짐을 풀기로 했다. 다섯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큰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내가 묵을 방으로 갔다. 텅 빈 방에 들어서는데 ‘혼자 지내니 편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은 왜였을까?
3시 30분에 참가자들은 심연당 강당에 모여 팀장님으로부터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다 모인 듯해 눈대중으로 살피니 대략 열다섯 명이었다. 팀장님은 참가자들에게 예불과 공양 시간, 경내 예절, 체험 프로그램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절에서 절하는 법은 P 보살님으로부터 배웠다. 절 주인은 부처님이니 부처님에게 절하는 법만큼은 제대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 보살님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다음 오체투지하며 절하는 시범을 보이면 참가자들은 따라 했다. 보살님은 저녁에 있을 예불에서는 절을 수시로 해야 한다면서 그 순서를 잘 모르는 참가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맨 앞에서 서겠다고 말했다. 나는 왠지 보살님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저녁 공양인 오후 5시 30분까지 주어진 여유시간이 나는 동아리 사람들과 경내 구경에 나섰다. 사천왕문을 지나고 금강문을 지나서 일주문으로 내려갔다. 일주문 옆에는 고암 이응로 화백의 자취가 남아 있는 수덕 여관이 있었다. 초가지붕을 이은 여관 건물을 돌아보는데 여관 뒤뜰 화백이 암각화를 새겼다는 바위가 있었다. 어둑한 바위 표면에 고불고불한 형상으로 파인 무늬를 보면서 ‘화백이 무엇을 표현하려 했을까?’ 라는 생각이 일었다. 그 궁금증은 여관 바로 아래에 있는 선미술관에서 풀 수 있었다. 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이응로 화백이 그린 수묵화를 음미하고 제2전시실에서 괘불 탱화를 감상하고 나오는데 현관 상단에 걸린 암각화를 뚜렷하게 본뜬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꼭 사람 형상들이 얼키설키 얽혀 있는 듯 보였다. 화백은 이리저리 뒤섞여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담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