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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Jul 26. 2021

어휘력·표현력 향상을 위한 ‘문학’ 필사

‘필사’ 글쓰기에 대하여(2)

어휘력·표현력 향상을 위한 ‘문학’ 필사

필사 발췌문: 『남한산성』, 김훈, 학고재, 2014, pp. 31~32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필사 작문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 어스름이 찾아왔다. 이미 광장과 도로는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지하철 출입구에서는 인파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회자가 퇴진 구호를 외쳤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였고, 그 울림은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를 뒤흔들었다. 하나의 촛불이 켜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열망을 담아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촛불의 바다는 출렁거렸고 불통의 벽을 넘는 거대한 해일이 일었다. 촛불은 횃불이 되고 민중은 새 희망을 노래했다. TV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대통령은 애써 민심을 외면했다. 퇴진을 바라는 민초들의 아우성은 들끓어 올랐고 국회의원들은 대책을 찾아 허둥댔다.


필사 발췌문: 『남한산성』, 김훈, 학고재, 2014, pp. 104~105

임금은 취나물 국물을 조금씩 떠서 넘겼다. 국 건더기를 입에 넣고, 임금은 취나물 잎맥을 혀로 더듬었다. 흐린 김 속에서 서북과 남도의 산맥이며 강줄기가 떠올랐다. 민촌의 간장은 맑았다. 몸속이 가물었던지 국물은 순하고 깊게 퍼졌다. 국물에서 흙냄새가 났다. 봄볕에 부푼 흙냄새 같기도 했고 마른 여름날의 타는 흙냄새 같기도 했다. 임금은 혀로 밥알을 한 톨씩 더듬었다. ···사직은 흙냄새 같은 것인가, 사직은 흙냄새만도 못한 것인가 ······. 콧구멍에 김이 서려 임금은 훌쩍거렸다.


필사 작문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폐부를 정화하는 청량한 공기, 퍼런 별들이 가득한 까만 밤하늘. 끝없이 이어진 별무리는 태곳적 전설이며 신비로운 신화를 품고 있었다. 물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저녁 한참의 소나기에 계곡물이 제법 불어났다. 급류의 포말이 터지며 비릿한 내음이 퍼졌다. 바위틈을 뒤덮은 이끼 냄새 같은가 하면 무성한 잎새들이 뿜어내는 수액 냄새 같기도 했다. 랜턴의 불빛은 칠흑 같은 어둠속으로 빨려들었다. 돌멩이 하나 그루터기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발밑을 확인했다. …… 정상은 성해(星海) 가운데 우뚝 솟아 잡힐 듯 했지만 쫓을수록 산짐승마냥 달아나버렸다. …… 턱밑까지 숨이 차올라 주저앉고 말았다.


필사 발췌문: 『남한산성』, 김훈, 학고재, 2014, p. 107

아이는 송파나루 사공의 늦둥이 딸이었다. 나루터에서 태어나 이름이 나루였다. 어미는 재작년 홍수 때 떠내려가는 솥단지를 건지려다 물에 쓸려갔다. 먼 하구 쪽으로 떠내려갔는지 무당은 어미의 넋을 건지지 못했다. 오라비들은 오래전에 봇짐장꾼을 따라서 대처로 나아갔다. 아이는 늙은 아비와 둘이서 강가에서 살았다. 손님을 모시고 얼음 위로 강을 건너간 아비는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언 강이 또 얼어서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빈 마을을 울렸다. 손님이 버리고 간 말이 강 건너 쪽으로 목을 빼고 길게 울었다.


필사 작문

검둥이는 누렁이의 새끼였다. 여섯 마리 중에서 유독 털빛이 까맸다. 누렁이는 서너 달 전에 줄을 끊고 수캐를 따라 나갔다. 개장수에게 끌려갔는지 동네 사람들은 누렁이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주인은 달포 전 강아지들을 장터에 내다 팔았다. 검둥이만 남아 집을 지켰다. 아침 일찍 읍내로 출타한 주인은 저녁나절이 되어도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늦은 밤 신작로에서 막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둥이가 목이 터져라 짖어대는 사이사이로 술 취한 노래 가락이 구슬펐다.


필사 발췌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현대문학, 2011, p. 18

마당 가꾸기는 내 집 마당이라는 소유욕과 이웃집 마당보다 더 예쁘고, 가지런하고 싶은 일방적인 경쟁심 때문에 고달프지만 그것도 노동이라고 그 후의 휴식은 감미롭다. 집 앞이 바로 숲이다. 숲이 일 년 중 가장 예쁠 때가 이맘때다. 매해 보는 거지만 5월의 신록은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눈부시다.


필사 작문

수능이 바로 코앞이다. 백일기도를 올리는 엄마의 마음은 다른 아이들보다 점수 더 잘나오고, 더 좋은 학교 보내고 싶은 욕심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서라도 자식을 위하려 혼신을 다함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암자에 사람이 몰릴 때가 사월 초파일과 요즘이다. 해년마다 온갖 정성으로 불공을 올리지만 공부한 만큼 점수를 받음에는 변함이 없다.


필사 발췌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현대문학, 2011, pp. 44~45

한강은 어느 날은 칭찬을 들을만하고 어느 날은 그렇지 못하다. 흐린 날씨가 아닌 데도 공기가 불투명한 날은 한강이 잘 안 보인다. 한강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 뜰 무렵이다. 강 건너로는 순한 짐승이 엎드려 있는 것처럼 능선이 부드러운 산봉우리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해가 불끈 솟으면 수면이 금빛으로, 은빛으로 때로는 주황색으로 부서진다. 물속을 노닐던 신비한 물고기가 잠시 그 아름다운 비늘을 드러내 보여준 것처럼 그 순간은 짧다. 짧지만 그런 날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고, 몸도 온종일 개운하지만 황사나 안개에 가려 안 보이는 날은 몸도 마음도 울적하게 가라앉는다.


필사 작문

글을 술술 써내려갈 때도 있지만 한번 막히면 영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적도 있다. 쉬운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무거운 것이 글머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글이 잘 써질 때는 머릿속에 글감이 샘솟는다. 원고지 칸칸이 채워지는 글귀들에 산천은 굽이쳐 흐르고 마을마다 이야기꽃을 피우면 나는 박경리로, 톨스토이로 이따금 헤밍웨이로 빙의된다. 펜촉이 지면(紙面)을 미끄러지듯 술술 써지는 날은 드물기에 한껏 써 재낀 두툼한 종이 뭉치가 뿌듯하지만 도통 실타래가 꼬여 풀리지 않을 때는 보이는 대로 다 뭉뚱그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다.


필사 발췌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현대문학, 2011, p. 75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우리를 덜 절망스럽게 하고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거야말로 바로 문화의 힘일 터이다. 그건 또한 문화민족이라면 문화재가 있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가 그걸 공유한 민족에게 이러한 영감을 주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리게 돼 있다. 뛰어난 장인과 훌륭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재력만 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자연의 풍상을 견디고, 사람들의 사랑과 공경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원형 위에 그런 신비한 더께가 앉는 게 아닐까.


필사 작문

땅이 타들어가는 가뭄과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홍수에도 수확의 희망이 있기에 농부는 굴하지 않는다. 그 희망에 힘을 내어 다음 해를 준비한다. 그러나 가을걷이가 끝나고 씨 뿌려 다시 거둬들이기까지 쉽지 않은 시기들을 겪어내야 한다. 땅이 비옥하고 자연재해가 없다고 수확을 보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 포기를 모르는 의지가 있고, 자식같이 곡식들을 위하는 정성을 다하기에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필사 발췌문: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똘스또이, 이강은 역, 창비, 2012, p. 23

이반 일리치는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마흔다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관리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빼쩨르부르그에서 정부의 여러 부서와 보직을 두루 거치며 출세가도를 달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출세란 보통 어떤 중요한 직무수행 능력을 딱히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저 오래 그 일을 해왔고 직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쫓겨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필사 작문

<아내의 남자>는 문예방송에서 16부작 미니시리즈로 기획되었지만 10부작으로 조기 종영했다. 진우연 작가의 작품이었다. 그녀는 주중 미니시리즈와 주말 드라마를 번갈아 집필하며 방송가에서 시청률 제조기로 자타가 인정하는 스타작가였다. 하지만 ‘진우연표’ 드라마는 빤한 줄거리에 불륜과 출생의 비밀, 극한 대립과 자극적인 대사로 아줌마 시청자 층을 사로잡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필사 발췌문: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똘스또이, 이강은 역, 창비, 2012, pp.71~72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히 인정했지만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키제베터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논법을 보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바로 이런 명백한 사살이 카이사르에만 해당되지 자신에게는 도무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필사 작문

문예방송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이번 드라마는 예상과 달리 시청률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전 작품에 비해 주연 배우의 지명도가 떨어졌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주요 원인은 진부한 스토리 구성으로 분석되었다. 새로운 트렌드에 목마른 시청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그런 저조한 성적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방송사도 <아내의 남자> 부진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이 바닥 사람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스타 작가에게는 고정 시청자 층이 있다. 고정 시청자 층의 충성도는 높다. 따라서 스타 작가의 작품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 금번 드라마도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아줌마들의 눈물샘과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승승장구할지 알았지 이런 처참한 지경에 빠지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필사 발췌문: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똘스또이, 이강은 역, 창비, 2012, p.111

가 살아온 인생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에는 전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높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 싸우고 싶었던 마음속의 어렴풋한 유혹들, 생각이 나자마자 신속하게 털어버렸던 그런 은밀한 유혹들, 어쩌면 바로 그런 것들이 진짜고 나머지 모든 것은 다 거짓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일과 삶의 방식, 가족, 사교계와 직장의 모든 이해관계도 다 거짓일지 모른다. 이반 일리치는 자기 자신에게 그 모든 것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가 변호하려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허약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무엇 하나 변호할 수가 없었다.


필사 작문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꿈에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추락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작가로 발을 내딛었을 때는 치열하게 썼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았던 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엔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은 열정이 있었다. 성공가도를 달린 후로는 자극적인 작품을 남발하며 시청률의 노예가 되어갔다. 그녀에게 쏟아졌던 제작사와 피디들의 찬사들이 모두 헛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는 워낙 쟁쟁한 드라마들과 경쟁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주위의 말들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진지한 고민 끝에 자신이 추구하고 이룩해놓은 성과들이 세상의 평가를 두려워한 가식들로 점철되어 왔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에 종지부를 찍어야 함을 느꼈다.


필사 발췌문: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김욱동 역, 민음사, 2012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팔십사일 동안 그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처음 사십 일 동안은 한 소년이 그와 함께 나갔다. 하지만 사십 일이 지나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이젠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게 ‘살라오’. 즉 운수가 완전히 바닥난 지경이 되었다고 소년에게 말했다.


필사 작문

만수는 근무하던 시화공단의 작은 염색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자 신세가 되었다. 근 일 년 동안 일자리를 알아보며 면접만 수십 군데를 봤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구직 초기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모두 취직을 했는데, 그만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마누라가 당신은 정말 ‘대책 없는 백수’,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짓지 못하는 무능력자라고 바가지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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