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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생일

by 메티콘

“스님, 생신 감축 드립니다.”

절에 새로 들어온 신도가 스님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스님은 어색해 하며 인사를 받는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처사님, 제 생일인 줄은 어찌 알고? 제가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아, 카카오 톡 ‘생일인 친구’에 오늘 스님 생신이 올라와서 말씀드렸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공양주보살이 끼어든다.

“스님 생신은 지난 섣달에 지내지 않았나유? 지금은 개구리가 폴짝대는 경칩이 지나부렀는디 무슨 생신이래유?”

“보살님, 맞아요. 지난겨울에 제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끓여주셔서 고맙게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디 얼토당토않은 생신 얘기는 다 뭐대유?”

“보살님이 말씀하신 생일도 처사님이 말씀하신 생일도 모두 제 생일이 맞습니다.”

스님은 얼굴에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신입 처사와 공양주보살을 앉혀놓고 자신의 생일에 얽힌 일화를 들려준다.

“제 생일이 둘인 데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저는 음력 섣달에 태어났습니다. 그해는 흉년이 들어 먹을 것도 없고 춥기도 추웠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저를 어렵사리 낳았는데 애기가 울지도 않고 축 늘어졌다고 합니다. 하긴 산모가 건강해야 애기도 건강한데 시절이 어렵다보니 그랬으려니 했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겨우 젖을 물리고 아버지는 대문에 금줄을 매달았습니다.

제가 태어난 다음날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려고 면사무소에 가려는데 고승 한 분이 목탁을 치며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탁발하러 온 줄 알고 지금은 흉년으로 드릴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했더니 고승께서 어제 태어난 아이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어서 들어왔다고 했답니다.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냐며 놀라자 고승께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엄동설한에 태어나 기운이 성하지 못하니 지금 출생 신고를 하면 명이 길지 못할 것입니다. 내년 경칩이 지나고 출생 신고를 하십시오. 그러면 아이가 봄기운을 받아 건강하게 자라서 훌륭한 인재가 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버지는 반신반의하며 대문 밖을 나서는 고승을 쳐다만 보다가, 잠시 후 쫓아 나갔는데 온데간데없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가 고승께서 말한 대로 다음해 경칩이 지나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매년 섣달에 저에게 미역국을 끓여주었지만 제 주민 등록 상의 생일은 양력 3월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사는 스님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지만 공양주보살은 아직 수긍하지 못한다.

“사연이사 그렇지만 귀빠진 날이 진짜 생일 아닌감유?”

“그까짓 날짜가 뭐 중하겠습니까? 내가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모두가 즐기며 행복한 날이면 바로 그날이 생일이지요. 보살님, 오늘도 지난번처럼 미역국 맛있게 끓여주세요. 처사님, 좀 기다리셨다가 저녁 공양하고 가세요.”

신입 처사는 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공양주보살은 종종걸음으로 공양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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