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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깨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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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로 Dec 17. 2021

추도의 말








 언젠가 피가 섞인 농담으로 그대 

찌푸린 얼굴에 축축함을 더했듯

그렇게 무덤에 하나를 하나 더 더해주시는 겁니다

비웃어주시는 겁니다 그대, 그 비웃음으로 기억될

비루한 제 시는 제 살을 베어 물었던 에릭시톤의 교훈사,

인간애, 그분에 넘친 지식의 역사, 배고픈 도끼질,

그렇게 도망치는 마음이며 이렇게나 사회적이며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사—이것은 끝이 없는 허기짐으로

남김없이 쓰인 법의학적 소견서입니다

여기 신원미상의 시체가 이빨만은 남기어 놓았듯

이빨만은 동안의 썩어짐을 안은 채 무너지진 않았듯

살아왔던 흔적은 곧 부질없음을 증거하고 있으니


이 사람은 아름답게 죽었으며

이 사람은 사랑하며 살았다는 것을

이 모두 참으로 사실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그는 매일 일상의 먼지를 쌓아 올렸으며

여기 비석은 그의 제단이자 제단은 그에게 시였으며

시는 증거이고 증거이자 시는 신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그대는 죄와 함께 이 심판자마저 사랑해주시는 겁니다


이빨이 이빨의 얼굴을 깨물어 놓지 않듯이

그대는 저를 시로서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한때 만개했고 이제 흩날리는

그러한 망각의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하는

여기 일찍이 멈춰 서게 된 자를 어리디 어린 이 마음을,

항상 배는 곯지 않고 살아왔던 분류 상 중산층의 꿈

나다움의 소망을 이제 그대 남김없이 잊어주시는 겁니다

그렇게 온통 온 마음으로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남김없이 먹어치우듯

그렇게 배가 불러 참을 수 없는 잠에 드시는 겁니다

여기 이곳에서 그대는 나와 함께 그를 그렇게

남김없이 기억해 보내는 겁니다


그대는 이제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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